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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짧은 머리 임윤찬, 또다시 전설 썼다… 예당에 몰아친 폭풍

등록 2022-12-11 11:02수정 2022-12-16 10:19

피아니스트 임윤찬 밴 클라이번 우승기념 독주회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독주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독주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지난 10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뚜벅뚜벅 피아노 앞으로 다가간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의자에 앉자마자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기념하는 독주회였다. 그는 이날 공연 내내 들뜨지도, 위축되지도 않은 채 불가사의한 흡인력을 발산했다. 합창석까지 가득 채운 청중은 숨죽인 채 연주를 지켜봤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의 90%가 기립박수로 응원했는데, 케이팝 아이돌 스타에 대한 열렬한 환호를 방불케 했다. 이날 연주에 대한 관객의 폭발적 반응은 조성진에 대한 열광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젊은 거장 임윤찬 신드롬’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가 연주한 피아노부터 조금 특별했다. 예술의전당이 최근 구입해 처음으로 무대에 내놓은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D274)였다. 임윤찬의 연주로 공식 무대에 ‘데뷔’한 ‘행운의 피아노’인 셈이다. 임윤찬은 예술의전당이 내놓은 3대의 피아노를 이리저리 쳐본 뒤에 이 피아노를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선곡도 예사롭지 않았다. 콩쿠르 우승기념 음악회인데도 콩쿠르에서 선보인 곡은 한 곡도 없었다. “콩쿠르 때 연주했던 곡을 다시 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했다. 손에 익은 곡 대신 새롭게 연마해야 하고 청중에게 낯선 곡을 고른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걷겠다는 신념과 뚜렷한 주관이 엿보인다. 음악에 대한 헌신, 젊은이다운 패기가 없으면 쉽게 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그는 아직 18살이다. 객석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지켜본 피아니스트이자 서울대 교수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은 “선곡에서부터 임윤찬의 탁월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첫 곡은 17세기 영국 작곡가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과 갈리아드’. 독특한 피아니즘으로 전설로 남은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초창기에 좋아했던 작곡가요, 즐겨 연주했던 곡이다. 이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벤션과 신포니아 중 15개의 3성 신포니아’(BWV 787~801). 그런데 원래의 순서가 아니라 굴드가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선보인 배치대로 연주했다. 굴드는 바흐를 해석하는 전통적 방식을 바꾼 연주자다. 임윤찬의 첫 앙코르곡도 바흐의 ‘시칠리아노’(BWV 1031)였다. 굴드와 바흐에 대한 임윤찬의 존경과 흠모가 곳곳에 깃든 연주회였다.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오늘 연주는 특별한 순간이었다”며 “윤찬이가 워낙 바흐를 좋아한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연주를 마치고 객석의 청중을 바라보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연주를 마치고 객석의 청중을 바라보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2부에선 프란츠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과 ‘단테를 읽고:소나타풍의 환상곡’을 연주했다. 임윤찬은 표현력과 기교를 동시에 요구하는 두 난곡을 섬세하면서도 묵직하게 접근했다. 강하게 타건할 땐 반쯤 일어섰다가 앉으며 힘차게 내리쳤다. 리듬을 탈 때는 고갯짓도 했는데, 머리를 짧고 단정하게 잘라 콩쿠르 당시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가끔 팔을 휘저을 땐 지휘를 하는 듯했고, 어깨를 좌우로 들썩일 때는 어깨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단테 소나타는 청중에게 압도적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가 왜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반복해 읽었다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은 “여러 부분에서 임윤찬의 반짝이는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며 “섬세한 표현력도 좋고 테크닉도 나무랄 데 없다”고 극찬했다. 연주를 끝낸 뒤에 청중의 기립박수가 끝없이 이어지자 임윤찬은 씽긋 쑥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는 두번째 앙코르곡으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가운데 ‘백조’를 들려줬다.

객석 분위기도 여느 연주회와 달랐다. 임윤찬이 한 곡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거나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동안에도 청중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지켜봤다. 곡과 곡 사이의 기다란 휴지기에도 정적이 흘렀다. 두어 차례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지만 전반적으로 집중력이 높은 연주회였다. 연주가 끝나고 임윤찬이 고개 숙여 인사할 때마다 함성이 쏟아졌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개관 이래 콘서트홀에서 가장 높은 데시벨의 함성이 터져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오후 1시30분부터 프로그램북과 최근 발매된 시디(CD)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섰다.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이 연주회장 앞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서 현장 분위기를 감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난 3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일본 데뷔 공연을 한 임윤찬은 내년 1월18일 영국 런던의 위그모어홀 연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활동에 나선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로마,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지의 투어 공연이 잡혀 있다. 유럽 음악계에서도 임윤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매우 높다고 최근 유럽을 다녀온 한 음악계 관계자가 전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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