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 모인 학생 시위대. <한겨레> 자료사진
동서 문명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지구적 문제에 대한 해법과 방향에 대한 세계정신(Weltgeist)의 필요성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드 파워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더 요청되는 것은 세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사유와 새로운 세계 정신의 출현이다. 한류가 동아시아 문명을 기반으로 소프트 파워 중심의 대안 담론으로 동아시아 르네상스를 불러 올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 위주의 한류가 미술,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세계정신으로 등장하는 동아시아 르네상스로 발전이 가능한 지에 관한 모색이 시작되고 있다.
임채원 포용과 혁신 정책기획위원장(에딘버러 방문학자)은 포스트 모더니즘과 동아시아 르네상스에 관한 토론을 제안했고, 지난 13일 ‘포스트 모더니즘과 그 이후’라는 주제로 이택광 교수(경희대)가 발제 하고, 김기봉 교수(경기대)의 사회로 장은주 교수(영산대)의 지정토론이 이어지는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택광 교수는 발제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시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아래는 그의 발제 요지다.
오늘날 철 지난 것처럼 들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시 호명해야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1990년대를 풍미한 이 용어가 21세기를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이 용어의 남용 때문에 발생한 숱한 오해와 편견은 이른바 “포스트모던 현상”을 만들어낸 역사적 조건에 대한 이해로 해소해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개념이라기보다 일종의 지적 운동이자 문화운동으로서 유럽 계몽주의의 모순 또는 한계를 드러내는 증상이었다는 관점에서 새롭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로 규정하든, 반복되는 모더니즘의 형식성으로 보든, 아니면 근대성의 종언이라는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새로운 인식론으로 수용하든 포스트모더니즘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을 경험한 유럽의 근대성에 대한 반성과 그 이후 도래한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유럽 근대성의 물적 토대는 다름 아닌 민족국가와 제국주의였던 것이고, 이 근본 문제는 여전히 오늘날 세계를 규정하고 있는 유산이다.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때의 유물로 박물관에 봉인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에도 지속하는 과거의 문제이자 오늘의 우리를 규정하는 조건으로서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과잉의 기표를 만들어낸 기원으로 거론하는 1960년대 프랑스 철학은 정작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리오타르나 보드리야르는 직접적으로 비슷한 용어를 도입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상식처럼 사용하고 있는 ‘그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과 다른 함의를 가진다. 여기에는 구조주의로 불리는 레비스트로스에서 발원하는 인류학의 이론이 배후에 깔려 있다. 물론 이 구조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포스트구조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교과서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탈구조주의라고도 번역하는 포스트구조주의는 편의적인 명명일 뿐이고, 이 용어 또한 이 지적 운동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없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른 말은 프랑스 현대철학
말하자면, 포스트구조주의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이 용어들은 이런 사상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만들어진 명칭인 것이다. 이를 대체하는 용어가 바로 ‘프랑스 이론’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때 프랑스 이론이라고 함은 1960년대에 등장해서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이후 절정에 달한 새로운 사상 흐름 또는 지적 운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연대기적 전개는 알제리 전쟁으로 촉발되고 1968년 5월 혁명으로 자명해진 프랑스 공산당(PCF)의 문제점들을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으로 내파하고자 했던 프랑스 좌파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 과정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긍정적으로 수용되기도 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런 호기심 어린 관심은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끝을 맺는다.
2008년 11월28일 100살 생일을 맞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왼쪽)가 그의 집을 방문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 일련의 논쟁 과정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보다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또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라는 명칭으로 더 명확하게 일관성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손쉽게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범주화해서 부르는 현상은 이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프랑스 철학의 이론적 대응이 글로벌 인지자본주의 시대와 조우하면서 지식 상품화한 것이다. 이 과정만 놓고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다. 제국주의 이후 비유럽 문명이 유럽의 근대 문명을 추격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교양주의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전후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의 운동과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는 냉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교양주의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탈(脫)서구와 탈(脫)근대의 시대적 담론
최근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내막은 구조주의와 마샬 플랜, 더 나아가서 실용주의와 기술관료주의로 자본주의를 재구성하고자 했던 미국의 대외 전략과 무관하지 않았다. 마샬 플랜을 현실화하기 위한 재정적 뒷받침은 록펠러 재단을 통해 이루어졌고,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이런 지원의 수혜자였다. 흥미롭게도 당시 미연방수사국은 훗날 미중앙정보국을 창립하는 후버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유대계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당시 미국의 최대 과제는 소련의 후방 교란이자 프랑스의 독자노선을 견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후버는 재정 지원을 승인한다. 2011년 기밀해제를 통해 드러난 1980년에 작성한 미중앙정보국 문서가 이런 정황들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미국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전시에 뉴욕의 망명정부가 세운 자유대학에서 조우한 체코 출신의 언어학자 야콥슨과 교류하면서 당시 미국 학계의 관심사였던 사이버네틱스와 정보이론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두 학자의 서간집에 이 과정의 전말이 잘 드러나 있다. 이렇게 사이버네틱스 이론과 얽혀 있는 구조주의의 기원은 왜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이 출현했는지 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짚어봐야 할 사안이다. 오히려 1960년대 이후 프랑스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이라는 입장에서 사이버네틱스 이론에 입각한 구조주의를 해체하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사이버네틱스와 정보이론에 기원을 둔 기술담론이 대세가 된 오늘날 이런 1960년대 프랑스 이론의 도전은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낡은 것이 새로운 것으로 귀환하는 현재의 교착상태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남겨 놓은 숙제를 다시 풀어야하는 것이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장은주 교수는 동아시아 정체성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래는 정 교수 토론의 요지다.
솔직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익숙한 학문적 배경에서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사실 피상적인 지식밖에 없었는데, 이택광 교수의 발제는 많은 정보를, 그것도 핵심 내용만을 집어서 소개해 주었다. 그는 특히 이 포스트모니즘이 사이버네틱스와 정보이론에 대해 갖는 관계를 강조했는데, 낯선 이야기였고 그만큼 의미가 컸다. 그리고 그는 이 지점에서 오늘날 Chat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과 관련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시 생각할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이 지점에서 그는 나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정말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그는 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오늘날 지나치게 서구 추종적이서, 이제는 서구보다 더 서구같이 변해버린 동아시아가 혼돈에 빠진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혹시 그런 길이 또 다른 서구중심주의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지만, 오늘날 다시 세계의 중심에 등장한 동아시아가 익숙한 오리엔탈리즘 저편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명해야 할 필요는 너무도 절실하다.
세미나 사회를 맡은 김기봉 교수는 한류가 대안문명으로서 문명사적 보편성의 획득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래는 김 교수의 제언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땐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지나서 보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근대 거대담론의 종말을 주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68’과 ‘89’의 변증법으로 역사화 됐다. 1968년 서구에선 기성세대의 질서를 전복하는 젊은 세대의 68혁명이, 동구권에선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자유화운동이 일어났다. 둘 다의 실패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란 마르크스 말을 전복하는 계기를 낳았고, 그 에너지의 총화로 총체성을 부정하고 차이와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담론이 탄생했다. 1989년 현실사회주의 붕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정이면서 역사의 종말론을 낳았다. 그 이후 세계를 지배한 담론은 세계화로 번역된 Globalization이다. 한국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의 압축 성장을 이룩한 세계 모범국가다. 그 표상이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한 한류다. 그렇다면 한류는 탈근대와 탈서구를 위한 대안문명으로 문명사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이 화두가 지금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소환하는 이유다. 이번 포용과 혁신의 목요포럼 주제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시 생각한다”는 답이 아니라 논의 시작점으로 의미가 있었고, 이제부터가 우리는 그 답을 만들어야 할 때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끝으로 더 이상 서구철학은 거대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쳇GPT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를 해석하고 규범을 제시하는 세계정신의 필요성은 더 절실해지고 있다. 파편화된 다양한 사유가 존중받아야 하지만 하나가 된 지구에 걸맞는 규범과 시대정신이 요청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서구 문명의 담론을 해체하는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한류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르네상스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세계정신으로 가능한 지에 관한 모색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