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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ESC] 꽁꽁 얼렸다가 녹인 두부 먹어봤나요?

등록 2022-05-07 20:58수정 2022-05-07 21:08

비건하고 있습니다ㅣ시공 초월 식재료, 두부
취두부·유부·두부면…대체육 아닌 고유한 정체성 자랑

나는 두부에 빠졌다. 두부에 대한 나의 사랑을 공개한다.

내가 두부를 사랑하는 이유는 두부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두부는 질릴 일이 없다. 두부는 응고한 콩물을 압착하는 강도에 따라 단단하게도 나오고, 연하게도 나온다.(단단하면 부침용, 부드러우면 찌개용이라는 건 국룰!) 또한 만드는 방식에 따라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되기도, 크렘브륄레 속처럼 입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의 연두부가 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튀기면 유부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식재료가 된다. 유부조림이나 음식의 고명으로 띄워 먹는 유부 대신 두부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맛과 식감 모두 다르다. 최근 한 식품 브랜드에서 두부면 파스타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원재료는 같지만 어떤 제조 과정을 거치냐에 따라 다양한 식감으로 즐길 수 있는 식재료가 두부다.

다양한 두부를 경험해왔지만, 나는 아직도 못 먹어본 두부가 많다. 최근 지인과 두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가 두부를 얼려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명 언두부. 두부를 얼렸다 녹이면 두부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단백질이 응고되고 식감은 더 쫄깃해진다. 수분이 빠져나가며 구멍이 송송 생겨 양념도 더 잘 스며든다고 한다. 그는 왜 이 사실을 지금까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는지!(물론 물어본 적도 없지만.) 다음날 두부를 사서 무작정 냉동실에 넣었다. 그런데 실수로 포장된 채로 냉동실에 넣어 두부를 보관하는 물까지 같이 얼려버렸는데…. 다시 녹이면 지인이 알려준 그 언두부 맛이 날까 궁금하다. 두부를 삭혀 만들어 냄새가 고약하다는 취두부도 있다. 맛이 궁금하지만 굳이 먹어보고 싶지는 않다. 콩을 삶을 때 태워서 맛을 낸다는 탄두부는 또 어떤 맛일까? 콩으로 만든 누룽지 같을까? 아주 궁금하다.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서 오랜 시간 두부를 사랑해왔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식으로 두부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각종 소스에 버무려 먹거나 달게 양념해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채소를 섞어 전처럼 부쳐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반찬으로도 많이 활용하고, 국에 넣는 재료로 많이 쓴다. 동남아시아에서도 두부를 즐겨 먹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카레에 넣거나 튀겨서 먹는다. 필리핀에서는 아침에 연한 두부에 흑당 시럽을 뿌려 먹는다는데, 이 또한 색다르다.

두부는 최고의 대체육이기도 하다. 대체육이라고 하면 보통 모양이나 식감을 고기와 비슷하게 만든 현대식 콩고기나 세포 증식을 통해 만든 배양육을 떠올리지만, 쉽게 말하면 고기를 대체하는 식재료다. 두부는 퓨전 요리에서 이미 대체육의 기능을 수행하며, 케밥·샐러드·포케 등에 고기 대신 두부가 들어간다.

두부의 다양한 활용은 근현대 비건 문화의 산물은 아니다. 두부는 육식을 금하는 동아시아 불교에서 오래전부터 중요한 단백질원으로 활용됐다. 과거 한국과 일본에서 불교 승려들은 고기를 대신해 두부를 먹었다. ‘비거니즘’이라는 단어는 오래되지 않았어도 채식주의의 역사는 깊기에 고기를 대신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여러 다른 문화권에서 이미 존재해왔다. 중동에서 즐겨 먹는 팔라펠이나 인도네시아의 템페를 보라. 현대의 콩고기가 있기 이전에 쫄깃쫄깃한 유부, 건두부와 두부피가 있었다.

하지만 두부를 대체육으로만 규정할 순 없다. 대체육은 채식 재료이면서, ‘고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체육은 식재료로서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기보다, 고기의 맛, 모양, 식감을 따라 하는 재료에 가깝다. 어떤 면에서는 고기를 ‘능가’할 수 없다.

그런데 두부는 두부다. 두부를 다른 음식에 비교하는 것은 두부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두부는 고기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단백질원이면서 동시에 고기를 따라 하고자 한 노력이 전혀 없는 고유의 음식이다. 팔라펠도, 템페도 마찬가지다. 고기와 식감도, 맛도 전혀 다르지만, 그 고유의 맛을 즐기기에 채식 요리에 자주 사용된다. 이제 대체육의 개발도 ‘고기와 비슷하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조상의 지혜가 담긴 두부와 같이 시대를 초월하는 고유의 음식으로 말이다.

홍성환(비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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