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시즌이 돌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제한이 풀리고 있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은 여행지인 북미에서 화사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한동안 조용했던 국제공항이 다시 북적북적하다. 비행기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한곳에서만 지내면서 몸이 근질근질했던 사람들의 방랑벽을 멈추지 못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여행의 계절을 맞이하여 비거니즘과 여행에 대해 써보려 한다. 비건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라면, 여행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음식은 여행의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요리나 현지에서 유명한 음식을 맛보는 것은 사람들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고 즐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듯 아무리 할 것이 많은 여행이라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맛없는 음식만 접하게 된다면 말짱 꽝이다. 한국 사람들이 굳이 외국까지 가서 신라면에 김치를 찾는 이유가 있다.
비건은 여행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나 식당 등을 사전에 알아보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기내식부터. 비행기에서는 기내식 말고 따로 먹을 것이 없기에 출발 전 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호리병에 든 음식을 바라보는 여우와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 기내식 채식은 다양한 국적과 신념, 취향을 가진 전세계인이 이용하는 만큼 의외로 선택지가 꽤 많다. 인도 채식, 자이나교 채식, 생야채식, 서양 채식, 동양 채식 등이 있다. 신청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항공사 누리집에 들어가 특별 기내식을 예약하거나 국적기의 경우 고객센터 전화 통화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비건이 아닌 독자라도 새로운 음식을 맛보길 즐긴다면 비건 기내식을 시도해보길 권한다.
비건의 여행 준비물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일상용품, 먹거리 등의 상황이 현지에 따라 어떨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준비가 필요 없는 여행지도 존재한다. 바로 ‘비건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 이스라엘, 대만, 타이 치앙마이 등이다. 나는 머지않아 서울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뉴욕의 경우, 비건 전문 식당도 많고, 일반 식당과 카페에서도 비건 선택지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생각지도 못한 음식들도 비건으로 먹을 수 있다.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스시, 일본 라멘, 아이스크림, 크루아상, 햄버거, 피자, 도넛, 소시지 등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미국 뉴욕을 여행 중이라면, 이곳에서 통과의례 같은 베이글 아침 식사를 권한다. 베이글은 유제품 등이 들어가지 않는, 비건 음식이긴 한데 치즈나 샌드위치 등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식재료를 곁들여 먹을 때가 많다. 하지만 뉴욕의 베이글 전문점들은 거의 대부분 비건 스프레드를 제공한다. 애초에 비건 선택지가 없는 베이글 가게는 뉴욕에서 성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두부 크림치즈와 아보카도, 양파를 얹은 블루베리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비건 천국에 왔음을 실감할 것이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한참 했지만, 사실 여행으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면서 드는 생각이 또 있다. 나는 동물이고, 동물은 사는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꾸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인간 동물도, 비인간 동물도 있다.
나는 비좁은 환경에서 인간을 위해 평생 살아가다 죽는 비인간 동물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금자리, 곧 농장 동물들의 안식처인 생크추어리다. 한국에서도 이런 생크추어리에 대한 결실이 하나둘 맺어지고 있다. 보금자리는 살아 숨 쉬는 존재에게 자유와 행복감을 되찾아주는 중요한 장소이자 해방구다.
내가 여행을 마음껏 다니듯, 갇혀서 사육되는 비인간 동물도 비참한 삶의 환경을 바꾸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비인간 동물을 위한 보금자리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이것이 여행이 나에게 준 깨달음이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모두 여행의 계절을 맞이하여 깨달음 얻는 자유의 여행을 떠나시기를.
홍성환(비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