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와인 같이 마실 사람이 많아서 좋겠다.”
어느 날, 와인을 좋아하는 한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이다. 주위엔 ‘소주파’뿐이고 동거인은 맥주 한모금만 마셔도 취하는 체질이라 술 자체를 안 마신다 했다. 집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자니 재미도 없고 와인도 남고, “비싼 술을 자꾸 사들인다”고 타박까지 들으니 와인 마시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 역시 처음부터 내 주위에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건 아니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여러 단계를 거쳐왔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좋아하게끔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삼겹살엔 레드 와인, 과일엔 화이트 와인을 마셔보게 한다. 와인과 음식을 맞추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삼겹살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이렇게 와인에 입문한 뒤 피자, 순대, 튀김 같은 음식에도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것을 직접 느끼게 되면 그들도 와인을 찾게 된다.
둘째, 비싼 와인이라고 설명하면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번은 마셔보고 싶어 한다. 여기서 가격을 말할 땐 굳이 발품을 팔아 저렴하게 샀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와인은 사실상 ‘정가’가 없는 술이지만 이럴 땐 공시돼 있는 정가를 말해도 괜찮다.
셋째, 어떤 와인이 맛있는 와인인지 느끼게 해준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와인 다 똑같지. 거기서 거기지”다. 그러나 신기한 점은 이들에게 여러 와인을 먹게 한 뒤 어떤 것이 가장 맛있냐고 하면 대부분 그중 가장 비싼 와인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는 것이다. 비싼 와인이 무조건 가장 맛있다고 할 순 없지만 어떤 와인이 비싼 것으로 대접을 받으며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알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의 단점은 “역시 와인은 비싼 것이 맛있다”며 진입 장벽을 더욱 높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땐 ‘가성비 와인’들을 추천해주며 의외로 ‘비싼 맛’을 보여준다고 하면 된다.
넷째, 취향을 발견하게 만들어준다. 와인이 어려워서 거부감을 갖는 사람에게 산지가 어디고, 품종이 뭐고 하는 설명은 더욱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 처음엔 그저 맛이 어떤지,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는 거다. 만약 그 사람이 호주 시라즈 품종의 와인을 마시곤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면 그다음에도 또 시라즈를 시켜준다. 그때도 맛있다고 하면, “넌 시라즈 품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다. 그다음엔 품종은 같되 산지가 다른 와인을 추천해주거나, 같은 산지에서 다른 품종을 고르는 식으로 비교해보게끔 만든다. 이렇게 하면 이들도 비교의 재미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까지 총동원해도 와인을 가까이하도록 만들기 어려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의 아빠였다. 도수가 높은 술을 선호하는 아빠는 와인을 마실 바에야 소주를 선택하는 쪽이었다. 결국 내가 꺼낸 비장의 카드는 소주와 도수가 비슷한 ‘몰리두커 더 복서’였다. 단골 와인숍 사장님이 추천해준 와인으로, 도수가 16도에 달해 소주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소주파들도 좋아하는 와인이라 했다. 역시나 이 방법은 적중했고, 처음으로 와인이 마음에 들었다며 마음의 문을 연 아빠는 요즘에는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자고 하는 날이 늘었다.
내 친구가 와인과 친구가 되도록 도와주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와인과 친구가 된 그는 다시 나의 좋은 술친구가 될 것이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