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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모두의 취향에 맞출 수 없다면

등록 2019-12-28 14:49수정 2019-12-28 14:52

[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16. 송년회·신년회에 어울리는 와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맛있는 와인 골라줘요. 대신 가격은 저렴한 걸로.”

최근 송년회를 겸한 회식 자리, 선배의 요구에 위기에 처했다. 그 자리엔 10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고, 그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두명도 아니고 열명이 넘는 인원이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어려운데, 가격도 저렴해야 한다니? 세상에 그런 와인이 있긴 할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들의 기대를 무너뜨릴 순 없었다.

빠른 속도로 와인리스트에 적힌 와인의 가격을 눈으로 훑은 뒤, 비장의 <신의 물방울> 카드를 꺼냈다. “이 와인은 <신의 물방울>에서 주인공이 마신 후,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들린다고 한 와인인데, 한번 마셔보시죠.”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들의 주목도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만화 <신의 물방울>로 관심을 끈 뒤, 퀸과 ‘보헤미안 랩소디’까지 나오면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한번 마셔보자고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보헤미안 랩소디, 안 들리는데?”라는 불평도 감내해야 한다. 당연히 그 어떤 와인을 마셔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들릴 리는 없지만 말이다.

이렇게 <신의 물방울>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만든 다음에는 “당신이 뭘 좋아할 줄 몰라서 종류별로 다 준비했어” 전략을 취한다. 달콤한 스파클링, 오크 풍미가 강한 레드, 산미를 느낄 수 있는 상큼한 화이트 등을 준비하면 그중 하나는 상대의 취향에 맞을지도 모른다. 또 와인의 맛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가벼운 바디의 피노누아르 품종과 찐득한 풀바디의 시라즈 품종을 준비하고, 각각 비교하면서 마셔보라고 하는 거다. 이런 방법이면 최소한 “와인이 다 똑같지, 뭐”와 같은 말은 안 나온다.

물론 많은 사람이 모이는 회식 자리에서 모두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와인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땐 유명인의 권위에 기대는 것도 괜찮다. 2015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신임 임원 만찬 자리에 ‘이기갈 지공다스’라는 와인을 골랐는데, ‘이재용 와인’이라며 유명세를 타게 됐다. 일단 ‘이재용 와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아진다. 또 이 와인은 입학, 취업, 승진 축하주로 알려져 있기에 새해를 앞둔 시점에도 알맞은데다, 5만원 이하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에 회식 예산안에서도 무리가 되진 않는다.

유명인, 연예인이라고 해서 꼭 비싼 와인만 마시지도 않는다.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마셔서 유명해진 와인 ‘우마니 론끼 비고르’와 장동건이 좋아한다는 와인 ‘롱그독 루즈’는 2만원대다. 정국과 장동건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사람들은 눈을 반짝일 터인데, 가격까지 알고 나면 더욱 기뻐할 것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인 만큼 이름에 의미가 담긴 와인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장고(장동건·고소영 부부) 커플’의 결혼식을 빛낸 와인으로도 유명한 ‘파니엔테 샤도네이’(Far Niente Chardonnay)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와인이 생산되는 파니엔테 와이너리는 이탈리아어로 ‘아무 걱정 없이’라는 의미를 지닌 ‘일 돌체 파 니엔테’(Il dolce Far Niente)에서 따왔다. 모두 함께 “일 돌체 파 니엔테”를 외치며 새해를 맞이하면 어떨까. 아무 걱정이 없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신지민 문화팀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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