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나의 와인 인생을 바꿔놓았다. 어떤 술이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셔야 맛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와인이란 술이 더 그렇지 않던가.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느라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줄어들었고, 당연히 와인을 마실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와인을 안 마셨냐고? 아니, 혼자 마셨다. 어디서? 집에서.
‘혼와인’(혼자 마시는 와인). 외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편한 면들이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나갈 필요 없지, 사람들과의 거리도 신경 쓸 필요 없지, 메뉴 선정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지. 그저 내가 원하는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준비하면 그만이었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켜놓으면 심심할 겨를도 없다.
그러나 혼자 와인을 마시려고 하다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어차피 혼자 마시는데, 나 혼자 비싼 와인 마실 필요 있나 싶다가도 혼자서 맛없는 와인 마시면 그것만큼 초라하고 쓸쓸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껴뒀던 좋은 와인을 꺼내기엔 왠지 아깝다. 같이 마시는 이들에게 내가 이 와인을 어디서 구해 왔는지, 얼마나 아껴놓고 묵혔는지 ‘썰’도 풀어야 하고 와인에 대한 평가와 소감을 나누는 것도 큰 즐거움이니까. 결국 1만~2만원대의 와인을 마시는, 무난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음식은 뭐가 좋을까. 혼자서 거하게 차려 먹을 수는 없는 법, 간단하면서도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르게 된다. 주로 떡볶이나 순대 같은 분식이나 피자를 준비한다. 이런 안주들은 어떤 와인과도 잘 어울리는 마법의 안주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여러 종류의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스파클링―화이트―레드 순서대로 마시고 싶은데, 그럴 순 없으니 말이다.
이처럼 혼자 한 병을 다 마시기엔 부담스럽거나,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절반 용량인 하프 와인도 있긴 하다. 그런데 하프 와인들은 종류가 많지 않고, 취급하는 와인숍도 많지 않아서 고를 수 있는 폭이 적다는 단점이 있다.
적당한 가격대의 무난한 와인과 어떤 와인에도 잘 어울리는 안주를 차려놓은 채, 영화 한 편이 끝날 때쯤이면 ‘혼와인’ 시간도 끝난다. 어차피 이미 씻고 편안한 복장으로 와인잔을 들었기에 간단히 세수와 양치만 하고 침대로 직행하면 그만이다. 혼자라서 외로움은 있지만, 이보다 간편할 순 없다. 술도 한 잔 했으니 꿀잠도 자게 되고.
그런데 이상한 건 유독 혼자 와인을 마시게 되면 취한다는 거다. 누군가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도 아닌데, 왜? 여러번의 ‘혼와인’ 끝에 답을 찾았다. 말을 안 하니까 술을 깰 틈도 없는 것이 아닐까. 혼자 집에서 마시니 긴장이 풀어지는 측면도 있을 테고.
그래서 최근엔 친구와 각자 와인을 마시며 영상통화를 하거나 음식 사진을 보내면서 건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랜선 와인 모임’이랄까. 실제로 같이 있진 않지만 함께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와인은 함께 마셔야 제맛이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와인을 나누며 감상을 나누는 그 순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른 랜선이 아닌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건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신지민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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