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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동차

외계인이 전기차를 왜?…포르셰 전기차가 다른 세가지

등록 2021-10-19 04:59수정 2021-10-20 16:53

전기차 전환, 모회사 디젤게이트 속 생존전략
고전압 시스템·2단 변속기 적용하고 성능 저하없어
타이칸, 6개월 만에 전년 판매량 넘어서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포르셰 전시장을 찾았다. 2층의 165 ㎡(50평) 남짓한 공간 한쪽에 길이 5m, 폭 2m에 달하는 흰색 왜건(뒤쪽 적재 공간을 넓힌 차)이 이 세워져 있었다. 포르셰의 첫 전기 왜건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다.

포르셰는 지난해 11월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국내에 출시했다. 그리고 1년 만에 타이칸을 일부 손 본 왜건 전기차를 또 내놨다.

회사 쪽은 타이칸 투리스모가 자동차의 전체 운행 기간 탄소 중립(이산화탄소 순 배출량 0)을 달성하는 세계 최초의 차라고 강조한다. 독일 본사가 풍력·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 발전에 10년간 10억 유로(1조4천억원) 이상을 투자해 차량 제조 단계는 물론 운행 과정에서 나올 탄소까지 사실상 상쇄하는 효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포르셰는 달리는 즐거움을 강조한 값비싼 스포츠카를 만드는 전통의 ‘내연기관 끝판왕’ 제조사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완벽한 차”라고 극찬한 포르셰의 대표 차 ‘911’은 60여 년 가까이 자동차 애호가들의 선망의 대상에 올라 있다.

이탈리아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다른 스포츠카 제조사는 아직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인데, 유독 포르셰만 변화에 속도를 내는 이유가 뭘까.

포르셰는 왜 전기차를 만드나

독일 포르셰 공장. 포르셰 누리집 캡쳐
독일 포르셰 공장. 포르셰 누리집 캡쳐
포르셰의 전기차는 엄밀히 말해 회사의 생존 전략이었다. 포르셰가 미래의 스포츠카로 전기차를 점찍은 ‘전략 2025’를 발표한 건 지난 2016년이다. 당시 포르셰 가문이 보유한 모회사 폴크스바겐그룹은 디젤 게이트(디젤 엔진 배기가스 불법 조작 사태)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친환경을 염두에 둔 이미지 쇄신이 반드시 필요했다. 전기차는 돌파구였다.

기술도 무르익었다. 유럽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 대회 ‘포뮬러 1’은 이미 2009년 하이브리드(내연기관 엔진과 전기 모터를 결합한 차) 시스템을 경주용 차에 도입했다. 유럽의회의 압박 등 친환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져서다.

홀가 게어만 포르쉐코리아 사장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우리는 918 스파이더 및 919 하이브리드 등을 통해 그간 전동화 가능성을 충분히 시험해 왔다”고 했다. 포르셰도 2010년부터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들었다. 전기차 기술을 닦아온 셈이다.

2019년 시장에 선보인 포르셰의 첫 전기차 타이칸은 이 같은 전략적·기술적 맥락 속에서 나온 차다. 포르셰는 새로 발표한 ‘전략 2030’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전체 판매 대수의 80%를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친환경 전기 스포츠카 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다.

포르셰 독일 본사의 올리버 블루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전기차는 수소차보다 약 3배, 합성 연료(합성 메탄올 ‘e퓨얼’)로 달리는 자동차보다 6배 더 효율적”이라며 “합성 연료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수소도 잠재력이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 포르셰의 전기차는 뭐가 다른가

배터리 충전 중인 포르셰 자동차. 포르셰 누리집 캡쳐
배터리 충전 중인 포르셰 자동차. 포르셰 누리집 캡쳐
포르셰의 자동차는 ‘외계인을 납치해서 만든 차’라는 별명이 있다. 그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포르셰가 만든 전기차는 뭐가 다를까. 지난달 말 포르셰의 전기차 ‘타이칸 터보 S’를 400km 정도 시승해 봤다.

시승 차는 무게가 2.6톤(t)에 이르는 무거운 스포츠카다. 배터리 무게 때문이다. 크기가 비슷한 포르셰의 내연기관 차 ‘파나메라’보다 500kg 가까이 무겁다.

그러나 급가속을 하자 운전석 옆에 둔 노트와 펜이 뒤로 날아갈 정도의 가속력을 발휘한다. 강력한 모터를 갖춘 데다 높은 전압 시스템을 이용해 모터에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해서다. 타이칸은 전기차 최초로 800볼트(V) 고전압 시스템을 적용했다. 대형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배터리 자체의 성능은 제조사별로 비슷한 만큼 전압을 높여 구동 성능을 개선한 건 자동차 제조사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2단 변속기도 타이칸 만의 특징이다. 일반 전기차는 기어비가 하나인 1단 변속기를 쓴다. 안동대 기계자동차공학과 김정민씨가 쓴 논문 ‘모델S와 타이칸의 가속 성능 비교 연구’를 보면 타이칸은 테슬라 전기차 모델S보다 모터의 힘이 떨어지지만 더 빠르게 달린다. 저속에서 모터가 16회 돌 때 바퀴는 1회 회전하는 저단 기어를 사용해 모터의 힘을 끌어올린 영향이다.

특히 코너링 안정감이 두드러졌다. 차의 묵직한 질량이 넓고 큰 타이어를 내리누르며 바퀴가 도로를 움켜쥐는 접지력을 높여서다. 찻값이 2억원을 넘는 만큼 보통의 자동차가 원가 절감 차원에서 넣지 못한 각종 기능과 장치도 풍부하다. 이석재 포르쉐코리아 팀장은 “몇 차례 급가속하면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일반 전기차와 달리 타이칸은 제원상의 성능을 연속해서 쓸 수 있다”며 “배터리와 모터를 데우고 식히는 쿨링 시스템에 비용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동 성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전비(전기차의 연비)가 낮은 건 약점이다. 배터리 완충 뒤 실주행 가능 거리는 300km대 후반으로 다른 전기차보다 짧았다. 다만 정부가 인증한 도심·고속도로 복합 기준 상온 308km, 저온 184km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주행 보조 시스템에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이 빠진 것도 아쉽다. 직접 운전하는 재미를 강조하는 포르셰의 정체성과 자율주행차로 진화하는 전기차 기술 발전 간 절충점이 필요하겠다.

포르셰의 첫 전기 왜건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 포르셰코리아 제공
포르셰의 첫 전기 왜건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 포르셰코리아 제공

■ 시장 반응은

시장은 포르셰의 변신에 반색한다. 타이칸은 출시 이듬해 2만 대가 팔려나가며 회사의 목표치를 달성했다. 올해 들어선 6개월 만에 2만 대 넘게 팔리며 포르셰의 상반기 역대 최다 판매 기록에 톡톡히 기여했다. 전기 스포츠카의 주행 성능이 내연기관 못지않은 데다, 포르셰 브랜드 충성도는 낮지만 프리미엄 전기차를 찾는 소비자를 새로 끌어들여서다.

한국 소비자의 열광도 유별나다. 국내에선 지난해 캐나다, 일본보다 많은 포르셰 자동차 7850대가 팔렸다. 현재 전기차 타이칸은 올해 판매 물량이 완판된 상황이다.

포르셰가 내놓을 다음 전기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마칸이다. 친환경 차 전환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꿴 포르셰는 이제 경쟁자를 공개 저격한다.

올리버 블루메 포르셰 CEO는 지난달 독일 뮌헨모터쇼(IAA) 개최를 앞두고 <블룸버그>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기차 전환이 늦은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이 있는 이탈리아 정부가 유럽연합(EU)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조치 적용 면제를 요청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앞으로 10년간 전기차는 무적(unbeatable)일 겁니다. 탈탄소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며 (페라리를 포함한) 모두가 기여해야 합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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