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 전기차 전용 주차장에 세워진 전기차들. 허호준 기자
주차장에 친환경차 전용 주차구역이 늘어나면 전기차나 수소차 구매도 늘어날까. 전 세계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친환경차량 가격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탓에 보조금 제도만으로는 보급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차·충전 등 친환경차 소유주들의 사소한 불편을 해결할 비금전적인 정책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20일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친환경차량 보급을 위해 정부가 (보조금 정책 같은) 지속적으로 부담 있는 정책을 펼 게 아니라, 비혼잡 시간에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든가 공용주차장에 전기차 전용 주차구획을 만들어주는 등 비금전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전기차를 사는 사람들은 300만∼400만원이 없어서 못산다기보단 남들이 못 누리는 혜택을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주차구역과 같이 친환경차만 주차할 수 있는 구역을 별도로 마련해 친환경차에 인센티브를 주고, 내연기관차에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관련 제도가 마련돼 있기는 하다. 법령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국가, 지자체 등 공공건물에 딸린 주차장과 노외주차장(도로 외 주차장)은 총 주차면수의 5% 이상을 친환경차 전용 주차 구역으로 설치해야 한다. 문제는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 공간도 친환경차 전용 주차 구역 숫자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전기차여도 충전기가 설치된 곳에서 충전하지 않은 채로 주차하면 불법이다.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규정에 따라 관련 조례를 만들어야 하는 광역지자체 담당자들도 친환경차 전용 주차 구역보다는 전기차 충전기의 추가 설치 여부만을 고민하고 있었다. 충전기만 설치해도 전용 주차 구역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광역지자체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충전기가 설치되지 않은 친환경차 전용 주차 구역을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선 따로 논의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전용 주차 구역 확대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정책 시행에 따른 우려점을 언급했다. “친환경차 비율이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현재 1% 내외에 불과하다. 친환경차 전용 주차 구역을 확대하면 내연기관 차량 소유자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전기차 충전 사업자가 난립한 탓에 충전 중에 겪는 불편도 전기차주를 힘들게 한다. 각 충전 사업자의 회원으로 가입해야 충전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에 회원카드를 여러 장 만들어야 한다. 충전 과정에서 인증·결제 오류를 겪는 일도 다반사다. 김성태 전기차사용자협회 회장은 “인증 및 결제 시 에러가 굉장히 많이 난다. 에러 여부를 최종 확인하는 데도 30초 넘게 걸린다. 자격을 못 갖춘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고 설치해놓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부터 전기차를 몰고 있는 김 회장은 충전 카드만 20장이다. 그는 “사업자 간 로밍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타 회원카드로도 결제가 가능하지만, 회원과 비회원의 충전요금 차이가 20∼30%에 달한다. 업체별로 회원카드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충전기의 숫자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질적 관리를 통한 전기차 문턱 낮추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카드 한장으로 모든 민간·공공 충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원스톱 충전카드나 공용주차장에서 심야용 완속 충전이 가능한 과금형 콘센트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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