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전기차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급속 성장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세계 시장점유율에서 밀리고 있다.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기술력을 쌓고 몸집을 불린 중국 업체들이 슬슬 대륙 바깥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국내 배터리 업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 시장조사업체 에스엔이(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세계 80개 나라에 새로 등록된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총량은 203.4GWh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76.8% 상승했다. 중국 시에이티엘(CATL)이 70.9GWh로 공급량에서 세계 1위를, 엘지(LG)에너지솔루션(엘지엔솔)이 29.2GWh로 2위를 기록했다. 두 업체 순위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동일했지만, 지난해 상반기 5.6GWh였던 공급량 격차는 올해는 41.7GWh로 크게 벌어졌다. 같은 기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도 시에이티엘은 28.6%에서 34.8%로 높아졌고, 엘지엔솔은 23.8%에서 14.4%로 떨어졌다.
다른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도 일제히 약진했다. 시장점유율 기준 세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중국 배터리 제조사 6곳 모두 세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한국 업체들은 에스케이(SK)온만이 114.4%로 세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을 뿐, 엘지엔솔과 삼성에스디아이(SDI)는 각각 6.9%, 50.6% 성장하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국내 배터리 3사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상반기 34.9%에서 올해 25.8%로 내려앉았다. 3사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시에이티엘 점유율에 못미친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상승한 배경에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영향으로 축소됐던 자동차 시장이 회복되며 전기차 시장도 다른 국가에 비해 빠르게 커져,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업체들이 내수 시장에서 쌓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북미·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주력 제품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다. 한국 업체들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떨어져 주행거리는 짧은 대신 가격이 20% 정도 저렴하다. 보급형 전기차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이에 미국·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 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테슬라는 이미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모델3에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고, 포드도 시에이티엘에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주문하기로 했다.
중국 업체들의 미국·유럽 직접 투자도 이어진다. 시에이티엘은 6조원을 투자해 북미에 80GWh 규모의 배터리 셀 공장을 짓기로 했다. 세계 시장점유율 8위인 중국 궈쉬안도 독일 보쉬 공장을 인수해 해외 첫 제조공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미래자동차학)는 “향후 5∼10년 사이에 배터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진다. 중국 배터리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안정돼 인정받다 보니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공급처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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