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직영 서비스센터가 없는 업체가 생산한 전기차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최대 250만원까지 깎고, 현대자동차그룹이 생산하는 전기차에만 적용된 기술에 보조금을 더 얹어주는 내용의 내년도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추진한다. 미국·중국 등이 자국 업체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정부도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15일 자동차 산업 관련 협회 및 완성차 업체들에 내년도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전달하고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날 공유된 문서를 보면, 정부는 올해 1대당 최대 700만원까지 지급했던 전기차 보조금을 내년에 최대 680만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내년부터 적용할 새로운 보조금 조건도 공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직영 서비스센터 운영 여부다. 전기차 사후관리 인프라에 가산점을 주겠다는 의도다. 직영 서비스센터가 없는 업체의 전기차는 전비·주행거리에 할당된 최대 500만원의 보조금을 절반밖에 못 받는다. 전비·주행거리가 우수하더라도 최대 250만원이 깎이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기아·한국지엠·르노코리아자동차·쌍용자동차 등 국내 차량 제조사들은 모두 직영 서비스센터를 운영하지만, 수입사들은 직접 운영하지 않고 딜러사에 맡긴다.
12월2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전기차 주차장에 충전 중인 차량들의 모습. 연합뉴스
‘비히클 투 로드’(Vehicle To Load)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에 신규 보조금 15만원도 지급하기로 했다. 비히클 투 로드는 배터리 전력을 외부로 빼내 가전제품 등에 사용하는 기술이다. 현재 국내 판매 전기차 가운데 아이오닉5·EV6·GV70 등 현대차그룹 전기차에만 이 기술이 적용돼있다. 지난 3년간 급속충전기 100기 이상을 설치한 제조사가 생산한 전기차에도 15만원의 신규 보조금을 지급한다. 완속 충전기 10기를 급속충전기 1기 설치 실적으로 인정해주기로 했지만, 이를 만족하는 업체는 현대차그룹, 벤츠, 테슬라 정도다.
업계에서는 중국·미국 등과 달리 국내에서는 수입 전기차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세금으로 해외 업체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자 정부가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자국산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일찌감치 자국 중심의 보조금 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미국이 지난 8월 현지 생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내놓으면서 국내에서도 보조금 차등 지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공학)는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준수해야 해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시행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면서도 “이번 개선안은 정부가 국내 업체에 인센티브를 더 주면서도 자유무역협정 기조에 위반되지 않는 방향으로 고민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2023년 전기승용차 보조금 체계 개선안’ 갈무리
수입차 업체들은 새 개편안에 반기를 들고 있다. 보조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수입차 업체들은 비슷한 사양의 전기차를 내놔도, 1대당 보조금이 최대 280만원까지 깎일 수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수입차 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소송까지 검토하겠다는 업체도 있다”며 “이들은 전기차 고객들이 실제 이용 가능한 서비스 인프라를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수입차 브랜드들은 딜러사가 운영하는 14∼80곳 정도의 공식 전기차 수리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환경부는 의견 수렴 뒤 조만간 최종안을 확정 지을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보조금 개편과 관련해 관계기관과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이 진행되고 있다. 관련 절차가 마무리돼 확정되면 공식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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