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디젤게이트’ 공동소송을 이끄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61·사진) 변호사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희대의 사기 사건이다.”
국내에서 ‘디젤게이트’ 공동소송을 이끄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61) 변호사는 12일 <한겨레>와 만나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을 이렇게 정의했다. 하 변호사는 “우리나라 피해자들도 미국처럼 대기환경보전법이 정한 배출가스 허용 기준을 고의적으로 어긴 불법 차량을 구입한 사기 피해자이기 때문에 동일한 배상을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차량 소유자 4500여명을 대리해 폴크스바겐그룹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 이 사건이 불거진 지 10개월이 지났으나 국내에서의 법적 책임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된 차량은 미국에서 47만대, 한국에선 12만5천대가 팔렸다. 겉으로만 보면 검찰과 환경부 등 정부 당국이 전방위로 압박하는 모습이지만 폴크스바겐은 법적 책임 문제에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특히 배기가스 저감장치의 소프트웨어 조작을 뜻하는 ‘임의설정’은 법적으로 미국에서만 문제가 되고 한국에선 위배되지 않는다는 게 폴크스바겐의 주장이다. 폴크스바겐은 오히려 환경부의 행정처분에 맞서 법적 대응 방침까지 꺼내들었다.
미국에서 순순히 책임을 인정하고 18조원 규모의 배상안을 내놓은 폴크스바겐이 한국에선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배경은 무엇일까? 하 변호사는 “미국에서 소송을 벌이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합의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소비자 집단소송은 한 명이 승소하면 판결 효력이 같은 입장의 피해자들에게 집단적으로 적용된다. 미국 법원은 또 실제 피해액의 몇 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증권 분야만 집단소송이 인정되고, 소비자의 피해 입증 책임도 큰 편이다. 하 변호사는 “국내 법률 환경은 기업한테 유리하고 소비자한테 너무 불리한 구조로 돼 있다. 우리도 징벌적 배상제와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불법행위를 한 기업이 소비자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변호사이자 미국 변호사인 그는 1986년부터 10년간 현대자동차 법무실장으로 활동한 제조물책임법(PL) 전문가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자동차 제조사 생리를 잘 아는 법률 전문가이기에 이번 소송 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은 만만찮은 상대였다. 하 변호사는 “미국에서 저렇게 했으면 한국에서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는데 그냥 뻣뻣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은 이번 사태로 국내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33%나 급감했다. 폴크스바겐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과 한국에서의 차별 논란이 거세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폴크스바겐이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배상할 뜻이 없다고 밝힘에 따라 한국만 유독 차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하 변호사의 생각은 다르다. “폴크스바겐의 지분 20%는 니더작센 주정부가 갖고 있고 주정부가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문제의 차량은 유럽에서 850만대가 팔렸다. 유럽에서 미국 식으로 배상해주려면 폴크스바겐은 문을 닫아야 한다. 독일도 자국 산업 보호론이 만만찮은 나라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니다.”
문제는 폴크스바겐이 임의설정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배상은커녕 리콜도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하 변호사는 “환경부가 자동차 교체 명령을 내리면 된다. 대기환경보전법에 그런 명령을 내릴 충분한 근거와 명분이 있다. 미국도 연방환경청과 캘리포니아주 환경청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바이백(환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리콜보다 강력한 제재인 자동차 교체를 명령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문제 차량을 신차로 교환하거나 환불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검찰이 밝힌 불법 사례는 배출가스 조작 말고도 소음·연비·배출가스 시험성적서의 위·변조 등 여러 가지다. 디젤차 말고 휘발유차도 걸렸고, 환경 인증을 받지 않은 유로6 차량도 적발됐다. 디젤게이트의 끝은 어디일까. 하 변호사는 “한국 검찰이 다른 나라 검찰이 손대지 못한 어마어마한 것을 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배출가스 기준을 10배나 넘긴 수많은 차량이 아직도 오염물질을 뿜어내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라.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