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발생한 케이티(KT)의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 장애는 본업인 통신 대신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탈통신 사업’에만 주력한 현 경영진의 실책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사업에 집중하느라 통신사업 네트워크 분야의 인력·예산 투자를 소홀히 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구현모 대표는 취임 첫해인 지난해 10월 통신기업을 넘어 인공지능(AI)·빅데이터(Big data)·클라우드(Cloud)의 앞글자를 딴 에이비시(ABC) 사업 중심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DIGICO)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동통신 사업이 정체기에 접어든 만큼 비통신사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취지였다. 최근 1년간 케이티의 주요 발표들 역시 에이비시 분야와 케이티스튜디오 지니의 유상증자 같은 미디어 사업에 초점이 맞춰졌다.
케이티는 전국적인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25일 오전에도 인공지능 컨택센터(AICC) 사업전략을 발표했다. 연간 3조원 규모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2025년까지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자리였다. 이날 구 대표는 “회사는 통신과 여러 플랫폼을 통해 충분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많은 투자로 에이아이 역량을 굳건히 다져왔다”고 신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작 케이티의 본업인 통신 서비스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논란에 휩싸였다. 5세대이동통신(5G) 품질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4월 한 유튜버의 폭로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속도 저하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가 실태점검에 나섰다. 8월에는 삼성전자의 3세대 폴더블폰 사전개통 첫날(8월24일) 개통 오류가 발생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케이티 내부에선 통신사업에 대한 투자 소홀이 이같은 위기를 야기했다는 말들이 나온다. 케이티가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9년 3조2568억원을 집행했던 설비투자비(CAPEX)는 구현모 대표가 취임한 지난해 2조8720억원으로 약 12% 감소했다. 올해의 경우 상반기까지 8641억원이 설비투자에 투입됐는데,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설비투자에 2조원이 채 안 되는 돈이 쓰이는 셈이다. 인력 배치 역시 신사업 중심이다. 케이티는 내년부터 3년간 매년 4000명씩 모두 1만2000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인데, 이들 대부분이 소프트웨어 개발과 아이티 설계, 보안 업무에 배치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내년 임기 3년차를 앞둔 구 대표가 신사업의 내실보다 외형적 성과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케이티는 ‘탈통신 가속화’를 위해 최근까지 비통신 기업간거래(B2B) 사업의 핵심인 클라우드와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부문의 분사를 검토해왔는데, 지난 20일 사장단 회의에서 이 계획의 보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클라우드 계열사에 견줘 자체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호계 케이티 새노조 사무국장은 “회사가 기존 네트워크 업무 인력을 계속 신사업 쪽으로 발령을 내 남은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통신 분야에서 자꾸 사고가 나는데, 경영진은 인공지능·클라우드 같은 사업에만 관심을 쏟는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론 회사가 탈통신 사업을 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지만, 기간통신사업자로서 기본적인 (네트워크) 투자도 안 하면서 ‘글로벌 에이아이 기업’을 말하는 건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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