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아침 서울대 내 입점한 ‘파리바게뜨’ 매장 앞에 에스피씨(SPC) 불매운동을 호소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제공
“불매운동 걱정되죠. 근데 저도 딸이 있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서….”
서울 영등포구에서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하는 ㄱ씨는 지난 20일 <한겨레>에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날 에스피씨(SPC)가 고인의 빈소에 ‘답례품’이라며 단팥빵과 땅콩 크림빵을 두고 갔다는 소식에 비난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는 ㄱ씨는 누리꾼들의 불매운동 여파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매출이 평소보다 15% 이상 적은 듯 싶다”며 “솔직히 에스피씨 점주들은 죄가 없는 선의의 피해자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이미지가 망가지고 매출이 하락하는데,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에스피씨 계열사 에스피엘(SPL) 평택 빵 공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이후 에스엔에스 등을 타고 불붙은 불매운동을 바라보는 점주들은 죽은 노동자를 애도하면서도 매출 하락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앞으로 들불처럼 번질 불매운동의 피해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자영업자로서 난감하지만, 그렇다고 “불매운동이 웬 말이냐”고 드러내놓고 입장을 밝힐 처지도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안양공장 ‘위생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던킨 가맹점주들은 좀 더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던킨 가맹점주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에스피씨 산하 브랜드에서 잇따라 위생문제, 노동문제가 터질 때 언젠가 큰 코 다칠 줄 알았다”며 “이건 ‘오너 리스크’를 넘어 회사 자체가 ‘리스크 덩어리’가 아니냐”며 “손님들이 와서 여기도 에스피씨 계열사냐고 물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일 오후 서울시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 게시판에 에스피씨(SPC) 제품 불매운동을 호소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던킨을 운영하는 또 다른 점주 ㄷ씨는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이후 에스피씨가 보인 ‘무능한 위기대처’가 사람들을 더 화나게 했다고 꼬집었다. ㄷ씨는 “사망사고가 났는데, 해외 점포 열었다고 홍보를 하고, 공식사과는 이틀 만에 하는가 하면, 사망자 빈소에 자사 빵을 답례품이라고 갖다놓는 것이 말이 되냐”며 “아무리 가맹점주라도 이해할 수 없는 대처를 하고 있어 황당하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는 에스피씨 계열 가맹점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호빵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에스피씨 계열사 ‘삼립’과 ‘샤니’ 호빵을 판매하는 편의점주들도 고민이 크다.
날씨가 급격히 싸늘해지면서 ‘호빵 성수기’가 돌아왔지만, 불매운동의 여파가 편의점 매출까지 떨어뜨릴까 봐 노심초사다.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ㄹ씨는 “호빵은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 빨리 판매를 해야 하는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호빵 폐기가 발생했다”며 “가뜩이나 사망사고로 찜찜한 마음이 들었는데, 당분간은 호빵 발주를 중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편의점주 커뮤니티에도 ㄷ씨처럼 호빵 폐기를 걱정하며, 발주 중단을 고민하는 편의점주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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