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에스피엘(SPL) 공장에서 작업 중 숨진 20대 노동자가 생전 엄마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사진 유족 제공
“항상 행복하세요” “알러뷰 너무너무 사랑~”
딸이 엄마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엔 ‘하트 이모티콘’이 가득하다. 메신저 대화방 속 두 사람은 친구에 가까웠다. “저 8일 야간에 출근해야 한다는데요ㅠㅠ” 딸이 갑자기 잡힌 야근 근무에 속상해하자 엄마는 ‘힘내세요 이모티콘’과 함께 “갑자기ㅜㅜ 내일 퇴근하고 엄마랑 토킹(이야기) 좀 하자. 고생해 딸~”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밤 9시38분. 딸은 야간 근무 때도 꼬박꼬박 “안녕히 주무세유” 문자를 보냈고, 엄마는 “응원해요” “사랑해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15일 이후 두 사람의 대화가 보이지 않는다.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에스피씨(SPC) 그룹 계열사 빵공장에서 일하던 딸은 지난 15일 새벽 6시15분께 ‘12시간 맞교대’ 야간작업을 하다 소스 배합기(교반기)에 끼어 숨졌다. 야간작업 10시간째였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그런 딸이었어요. 딸만 바라보고 살았는데…지금 내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에요.”
20일 충남 천안의 한 납골당에서 처음으로 언론사 공식 인터뷰에 응한 엄마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사고 엿새째인 이날 엄마와 유가족 10여명은 외부에 발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 절차를 마무리했다. 오전 8시께 딸은 한 줌의 재가 됐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가 떠나고 날씨는 평년 기온을 찾았지만, 엄마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빵 만들기를 좋아해 고등학교에서도 베이커리과를 전공했던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비정규직으로 파리바게뜨 매장 제빵사로 취직했다. “졸업 뒤 바로 매장에서 일했어요. 근데 혼자 일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상사가 스트레스도 많이 주고…7개월 일하다 그만뒀어요.”
경기도 평택 에스피엘(SPL)공장에서 끼임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인 지난 16일, 정의당 의원들이 공장을 방문했다. 관계자들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사고가 발생한 교반기 공간을 가린 흰 천을 걷어내고 있고, 뒤에서는 동료 노동자들의 작업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정의당 이은주의원실 제공.
과도한 업무 탓에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도망치듯 나왔지만, 딸은 빵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파리바게뜨에 빵 반죽 등을 납품하는 에스피엘(SPL) 공장이었다. “(정규직으로 입사한 데다) 대기업이고 하니 기뻐했죠. 딸은 나중에 매장을 하나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에스피엘 공장에서 일하면서 딸은 자주 격무를 호소했다. 딸은 1년 넘게 야간근무조로 일하며 밤새 10~15kg이 되는 재료를 옮기고 기계를 돌렸다. 2주 야간, 2주 주간의 반복이었다. 엄마는 12시간을 밤을 새우고 집에 돌아오는 딸이 축 늘어진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무거운 걸 많이 들어야 했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었어요. 집에 올 때마다 늘어져 있는 게 얼마나 안쓰러웠는데…20대 초반인 애가, 파스를 뿌리고 붙이고. 그래도 대기업이니까 믿고서 보낸 거죠. 대기업이니까…”
사고 이후 엄마는 딸을 ‘소녀 가장’으로 묘사하는 언론 보도에 분노했다. 딸은 스스로 야간 근무를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가 인력이 없는데 애가 일도 잘하고 착하니까 야간조에 투입하려고 회사에서 처음에 강요식으로 한 것 같아요. 인원보충을 위해 거의 반강제로 투입이 된 거에요.” 실제 사고 이후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야간근무 인력이 부족해 회사에 충원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열악한 야간 인력 상황을 폭로한 바 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빈소에는 허영인 에스피씨 그룹 회장 등 많은 회사 관계자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아무도 왜 딸이 혼자 그곳에서 일을 하다 변을 당했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왜 그 기계에는 안전장치가 없던 건지, 왜 2인1조라는 매뉴얼은 안 지켰던건지 누구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기계에 안전장치 그거 하나 다는 게 힘든 건가요? 노동자를 기계로 보는 게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런 기계에서 일을 하라고 했을까요.” 엄마는 일주일 전에도 끼임 사고가 있었다는 걸, 그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사고가 있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사고 잦은 곳을 누가 보내고 싶겠어요. 딸은 집에서 걱정할까봐 말을 안 한 것 같은데…이런 걸 진작 알았더라면. 회사 간다고 했을 때 어떤 회사인지 좀 더 알아 볼 걸.” 엄마는 그리움만큼 후회로 사무친다.
빵을 좋아하던 딸은, 죽는 날까지 빵을 만들다가 죽었다. 그리고 지금도 에스피엘 공장에서는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이 빵을 만들고 있다.
“항상 사건이 터지는데 똑같잖아요. 제발 좀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회사에 바라는 건 단 하나밖에 없죠.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최소한의 근무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거. 노동자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건 사지 말아아죠. 우리 딸이 정말로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어요….”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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