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상품 구매 쉬운 플랫폼
시는 1곳당 750만원 ‘연대 펀딩’
한국 100만원 이상 선결제 조건
할인 등 이익 없어 개인들 냉담
시는 1곳당 750만원 ‘연대 펀딩’
한국 100만원 이상 선결제 조건
할인 등 이익 없어 개인들 냉담

지난 7월 무대디자이너들이 영국 런던 해크니 엠파이어 극장에서 모금을 위한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체인지(SCENE/CHANGE) 사회관계망서비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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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드펀딩과 연대소비의 ‘만남’ 어려움에 처한 단골을 돕자는 이 캠페인의 성공 뒤엔 숨은 ‘공신’이 있다. 바로 런던시가 지난 4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크라우드펀더’와 손잡고 구축한 ‘페이 잇 포워드 런던’(Pay It Forward London)이라는 선결제 시스템이다. 시민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런던 지역의 식당이나 카페, 극장 등에서 나중에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미리 구매했다. 상점명이 적힌 배지나 의류 등 기념품을 받거나 단순 기부도 가능하다. 크라우드펀딩은 원래 자금이 필요한 사람이 불특정 다수한테서 자금을 모으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 소개를 보고 결제하면 펀딩을 받은 사람은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상품이나 서비스를 마련해 제공한다. 쉽게 구하기 힘든 상품이나 예술가의 창작물 등 가치를 담은 소비행위를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했다. 런던시가 주도해 만든 ‘페이 잇 포워드 런던’은 크라우드펀딩의 특징인 선결제와 시민 참여를 연대소비로 이어준 디딤돌이 됐다. 런던시는 스스로 선결제 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업체 200여곳에 최대 5천파운드(약 750만원)까지 총 100만파운드를 시는 지원했다. 이런 매칭 효과는 컸다. 애초 ‘페이 잇 포워드 런던’을 통해 크라우드펀딩에 나선 소상공인들은 자신이 설정한 펀딩 목표치의 25% 이상 자금이 모여야 최종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런던시가 매칭에 나서면서 목표치를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이뿐 아니다. 런던시 매칭은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안심하고 선결제에 적극 나서도록 유인하는 역할도 해냈다. _______
■ 공공기관, 펀딩 금액에 일대일 매칭 지원도 비슷한 사례는 미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시간 주정부 산하기관 미시간경제개발공사(MEDC)는 지난 5월 디트로이트 지역 기반 플랫폼인 ‘패트로니시티’와 협업해 지역 소상공인이 사용료 없이 무료로 펀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미 로컬 비즈’(MI Local Biz)를 구축했다. 공공기관이 소비자와 가게 주인들을 이어주는 튼튼한 선결제 다리를 놓고 난 뒤 상인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한 카페는 선결제 금액별로 음료와 기프트카드, 평생 10% 할인권 등을 내걸었다. 후원 금액별로 쿠키와 티셔츠를 제공한다며 손짓한 베이커리도 등장했다. 이달 초 현재 선결제 참여 인원은 모두 6393명. 공사가 일대일 매칭으로 업체당 최대 5천달러까지 지원한 액수를 빼더라도 53만달러(약 6억원)의 돈이 지역 가게로 흘러갔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선결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하나둘 성과를 내면서 기존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도 기부나 선결제를 요청하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 ‘고펀드미’(GoFundMe) 등 국외 여러 플랫폼에선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 소상공인들이 글과 사진, 영상을 올려 펀딩을 요청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곳 직원이 항상 친절하게 서빙해줬다’ ‘가족이 이곳 음식을 좋아하는데 식당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 선결제에 나서는 단골손님의 댓글이 이어진다.

지난달 22일 낮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 식당에서 학생들이 선결제 쿠폰을 이용해 결제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시민 참여 없는 ‘착한 선결제 캠페인’ 정부나 공공기관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활용해 선결제 효과를 극대화하는 국외의 여러 사례들은 국내 현실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초 3조3천억원 규모의 ‘선결제·선구매 등을 통한 내수 보완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항공권이나 각종 행사비용 등을 선결제하거나 세액공제나 소득·법인세 공제 등 민간의 선결제 인센티브를 높이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정작 골목의 자영업체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실제 상반기에 진행된 ‘착한 선결제 캠페인’은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대기업 등이 기존 거래처나 인근 식당에 일부 금액을 선결제하는 등 ‘보여주기 행사’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애초 정부가 제시한 금액엔 건설투자 조기집행 등의 명목으로 잡힌 액수가 상당한데다가 무엇보다 선결제 인프라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시민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는 선결제 금액의 1%를 소득·법인세에서 공제해주기로 했으나, 세액공제는 대상이 개인사업자나 법인이고 1회당 최소 100만원 이상을 선결제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일반 시민이 참여할 유인은 작은 셈이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직장인 최우정(27)씨는 “할인이 되는 지역화폐 등과 달리 선결제는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딱히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먼저 나서서 도와야 할 정도로 단골 가게도 없어 선결제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_______
■ 인프라와 유인체계 다듬어야 무엇보다 선결제를 통한 연대소비를 뒷받침해줄 튼튼한 인프라를 마련하지 못한 건 뼈아픈 지점이다. 실례로 중기부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가 중심이 돼 진행한 ‘착한 선결제 캠페인’ 경우에도, 소상공인들이 캠페인 누리집(good-buy.co.kr)에서 선결제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POP)을 무료로 다운받아 프린트한 뒤 가게에 붙일 수 있도록 한 게 사실상 내용의 전부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뜻이 있더라도 소비자가 선결제를 할 수 있는 가게를 찾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착한 선결제 캠페인을 해보고 싶어 근처 가게에 몇 군데 전화해보니 선결제가 뭐냐고 묻더라”며 “선결제가 가능한 매장 정보를 알려달라”는 내용의 글이 줄을 이었다. 상인들 처지도 마찬가지다. 서울 마포구에서 25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소영철(60)씨는 선결제 캠페인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면서도, “선결제를 받으면 좋겠지만 문의한 손님도 없었고, 소비자에게 딱히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닌데 과연 누가 해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철 한국외식업중앙회 홍보국장은 “착한 선결제 캠페인의 취지는 좋았지만 외식업 종사자 대부분이 관련 내용을 모르거나, 알아도 어차피 일반 고객의 선결제는 안 들어올 거라는 생각에 안내문조차 붙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며 “선결제 참여를 늘릴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과 확실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원금부터 내고 나중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크라우드펀딩은 선결제 개념과 맞닿아 있다. 영국 런던시의 ‘페이 잇 포워드 런던’처럼 공신력 있는 플랫폼을 갖추면 소상공인과 소비자 양쪽의 참여를 늘리는 데 큰 보탬이 된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자신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도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유인”이라며 “소상공인의 직접 선결제 요청이나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는 한계가 있다. 공신력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좀더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엔 이미 자리잡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여럿 있다. 2011년 선보인 텀블벅은 현재 월평균 이용자 수가 약 110만명이다. 누적 거래액도 1100억원에 이른다. 2013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와디즈도 현재 월 평균 누리집 방문자 수가 약 980만명, 누적 거래액은 약 3940억원이다. 이 밖에 네이버 해피빈, 카카오 같이가치, 광주엔지오(NGO)시민재단이 운영하는 상상트리 등 기부 성격이 짙어 수수료가 아예 없거나 싼 플랫폼도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 나설 민간 인프라는 준비돼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시 세액공제 등 당근책보다 안정적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기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결제가 주로 이뤄지는 업종인 음식점업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큐아르(QR)코드, 배달앱 등으로 디지털과 가까워져 플랫폼에 대한 수용성은 문제가 안 될 것”이라며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에게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 센터 등에서 지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한달에 한번 이상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제품을 산다는 대학생 김아무개(25)씨는 “자주 가던 카페가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 문을 닫았다”며 “방법을 몰라 선결제에 참여해본 적이 없는데, 펀딩처럼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을 통해 좋아하는 가게를 도울 수 있다면 시도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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