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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조건없는 헌납 해로워” ↔ “돈으로 해결하려고”

등록 2006-02-08 17:27수정 2006-02-08 18:43

삼성의 8000억 기부를 보도한 8일치 중앙 · 조선 · 동아 1면 머릿기사.
삼성의 8000억 기부를 보도한 8일치 중앙 · 조선 · 동아 1면 머릿기사.
삼성의 8천억 기부와 ‘대국민 발표’를 보는 여러 시각들

‘1등 기업’ 삼성이 넙죽 엎드렸다. 삼성은 7일 △총 8000억원 상당 사회헌납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등 취하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운영 △구조조정본부 축소 등을 뼈대로 한 ‘해법’을 내놓았다. 한국 사회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비대해져 이른바 ‘삼성공화국’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라는 것이다.

정치, 언론,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일제히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내용은 제각각이었다. 보수언론과 경제단체 등이 “사재를 사회에 헌납했다. 반기업 정서가 해소되길 바란다”며 환영하는 반면, 참여연대 등은 “의미있는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지배구조 등 근본해법은 미흡하다”는 평가를 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등은 삼성이 “법적인 책임대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거나 “8천억원은 대국민 로비자금”이라는 등 비판을 쏟아냈다.

보수언론 ‘이건희 일가의 결단, 8000억 기부’에 초점
중앙일보 “삼성 때리기는 황금거위를 제 손으로 죽이는 일”
조선·동아 “조건없는 재산 헌납 자본주의 발달에 해로워”

대부분 신문이 삼성의 8000억 기부를 머릿기사로 보도하고, 의미를 분석하는 해설기사를 내보냈다. 사설에는 삼성의 사회기부 등을 바라보는 신문들의 논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수언론들은 삼성그룹이 아니라 “이건희 삼성일가가 사재를 털어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했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또 삼성이 21조3000억원을 신규 투자하고 2만명 이상을 새로 고용하기로 했다는 부분도 덧붙였다. 보수언론들은 삼성의 이번 조처를 ‘반삼성 잠재우기’(조선일보)라거나 ‘반삼성 누그러뜨리기’(동아일보) 등으로 해석하며 대체로 ‘긍정적인 결단’이라는 평을 내놨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삼성의 대규모 기부를 환영하지만은 않았다. 우려가 깊었다. <동아일보>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국내 최대 사재 헌납’이라는 사설에서 “정치권력이나 시민단체 등이 기업을 압박해 항복을 받아내는 식으로 사재 헌납을 유도해서는 곤란하다”며 “노무현 정권과 일부 시민단체 등의 집요한 ‘때리기’에 삼성이 밀렸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8000억 기부에 대해 “기업이건 기업주건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사회에 헌납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달에 유해한 전례가 될지 모른다”며 “강압적 군사정권하에서 번번이 되풀이되던 재산 헌납의 과거사에 비추어봐도 분명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8000억원 기부 등이 자기 반성에 따른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외압이나 여론의 압력에 따른 것이란 시각이다.

<중앙일보>는 삼성 일가와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 결단에 보다 무게를 두었다. 중앙은 ‘조건 안 단 8천억 이건희식 해법’이라는 기사에서 “우리 사회 일부의 반삼성 여론을 반영해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았다”며 “사회 헌납 의사를 밝힌 8천억원의 기금은 예상보다 크며,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 “지난해 봄 삼성공화국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건희 회장이 ‘왜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잘 연구하고 대책을 세워보라’고 지시했다”는 삼성 내부의 사정을 상세히 전하며 “삼성이 법논리 대신 여론을 택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은 ‘삼성의 변신 노력 합당한 평가 있어야’라는 사설에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회공헌은 최고의 수익을 내는 것이고,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통해 사회에 보답하는 것”이라며 “‘국민정서’라는 애매한 잣대로 삼성 때리기에 골몰한다면 이 땅에서 배겨날 기업이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은 “‘재산 환원으로 비난 여론을 무마하려느냐’는 식의 왜곡은 황금거위를 제 손으로 죽이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일축했다.

<한겨레> 등 “지배구조·삼성차·무노조 문제 언급없어”
<오마이뉴스> “이건희 입국 사흘 만에 ‘삼성공화국’ 재건 첫 삽”

보수언론이 이건희 일가의 8000억 기부에 초점을 맞췄다면 진보적 시각의 언론들은 “본질적 문제인 지배구조에 대한 해결책이나 무노조 경영에 대한 해법 제시가 없다”며 “근본 해결책으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의 말을 빌어 “문제의 본질은 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배와 배임에 의한 2세 승계를 합법화하기 위해 법과 원칙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이재용→에버랜드→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전혀 없고, 취득 당시 부당이익 환원만으로 세금 없는 대물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편법 증여를 통해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가 얻은 부당이득은 1조원이 넘고, 경영권 승계 기반을 구축한 것까지 합하면 그 값어치는 천문학적인데 잘못된 행위의 결과는 그대로 둔 채 이뤄지는 일부 사재출현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더 큰 결단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오마이뉴스>는 8일자 기사에서 “삼성이 출연한 8천억원 중 4천5백억원은 2002년에 출연을 약속한 이건희 장학재단 돈이고, 나머지 3천5백억원 가운데 이재용씨가 내놓은 돈은 1100억원이나 이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통해 취득한 주식 시가 총액 추정치인 1조1천억원의 10분의1 수준”이라며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삼성에) ‘남는 장사'로 최소 성의에 최대 효과를 기대하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 절하했다. <오마이뉴스>는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될 게 거의 없는 게 삼성의 대국민 발표다”라며 “이건희는 입국 사흘 만에 ‘삼성공화국 재건' 첫 삽을 뜬 것”이라고 비꼬았다.

한나라 “반기업 정서 극복해야” 열린우리당 “늦었지만 환영”
박영선 “편법증여 세금 안낸 것 철저한 사후조처해야”

삼성의 지배구조 등의 문제를 풀 입법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도 삼성의 대국민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지배구조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불리한 국민정서를 돌려보려는 고육지책이 아니라 삼성이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삼성 경영진의 발표를 환영한다"면서도“지금은 반기업 정서 등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이런 국민정서의 극복을 위해서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국정감사에서 삼성 문제를 적극 제기해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뒤늦게나마 삼성이 잘못된 점을 인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현재 법을 어기고 있는 부분이나 편법증여로 세금을 안낸 것과 관련해 철저한 사후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민주당 김종인 의원도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가 본질”이라며 “사회적 물의가 생기면 장학재단 설립을 이야기하는 등 과거 어려움을 겪으면 진정시키려던 해법과 흡사하다”고 깎아내렸다. 김 의원은 8일 CBS 라디오 <오늘과 내일>에 출연, 금산법과 수용과 관련해 “국회 결정을 수용하는 건 당연하다“며 “법을 만들면 지키는 것이지, 그것을 놓고 수용하느냐 마느냐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난했다.

노회찬 “법적 책임회피, 돈으로 해결해보겠다는 식”
진중권 “경영권 세습 위해 국민에게 뿌리는 로비자금”

삼성의 대국민 발표에 가장 비판적인 쪽은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8일 <진중권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돈으로 조금 해결해 보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 의원은 8천억원 기부와 관련해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매입 과정에서 발생한 시세차익”이라며 “불법 매입으로 경영권을 쥐었으면 경영권을 내놓아야지, 그것을 돈으로 환산해 시세차익만 내놓은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맹비난했다. 노 의원은 특히 “그룹 총수의 무모한 경영 때문에 삼성자동차의 큰 손실이 있었고, 당시 삼성자동차를 청산하면서 난 손실 3조7천억을 이 회장이 ‘사비를 털어서라도 갚겠다고 했다”며 “빚이 있는 사람이 빚을 갚아야지, 후원이나 사회환원이라고 하면 말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삼성의 소송 취하와 관련해서도 “어차피 삼성이 이길 수 없는 소송이었기 때문에 취하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며 “마치 정부를 봐준다는 식의 인상을 풍기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엑스파일에서 언급한 삼성그룹의 관련 문제를 파헤치고, 에버랜드 전환사채 수사를 조속히 촉구하는 등 세습 경영권을 원상 회복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책임질 것은 반드시 책임질 수 있도록 법이 살아 있는 심판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진행자 진중권씨는 라디오 홈페이지 칼럼에서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국민들이 이건희 회장을 비판하는 것은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을 우롱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밝힌 뒤 “국민의 뜻은 애먼 사재를 털 게 아니라, 남들 다 지키는 법 같이 좀 지키라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진씨는 “정작 중요한 부분은 삼성의 지배구조에 관한 이야기인데 슬쩍 비켜갔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런 본질적인 부분을 손대겠다는 의지 없이 그저 사나워진 민심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대책이라면, 모처럼 내놓은 8000억원의 사재는 어느 매체의 지적처럼 경영권 세습을 인정받기 위해 국민에게 뿌리는 로비자금 정도로 인식될 뿐”이라고 일갈했다.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의 ‘적대적 인수합병’ 등의 우려에도 법 논리대신 (반삼성 정서의 무마를 위해) 여론을 택했다는 삼성의 선택은 이처럼 또다시 여론의 역풍에 휘말리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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