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7일 내놓은 ‘대국민 발표’는 앞으로 변화 가능성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공화국’으로 거론되는 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비켜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에버랜드 주식을 편법 보유하면서 비롯된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를 외면했을뿐더러, ‘편법 승계’에 대한 사회와의 인식차도 별로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당이득 10%만 환원?=그동안 삼성에 대해 제기돼온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세금 없는 대물림’ 문제다. 삼성은 이날 8천억원의 기금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이재용 상무가 계열사 지분을 취득할 당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800억원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 정도로 편법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미흡하다.
참여연대에서 계산하기로는, 그동안 이 상무가 얻은 주식 이득은 무려 1조원이 넘는다. 이 상무의 재산 가치는 취득 당시 발행 가격과 현재 가격에 대한 계산법 차이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컨대, 에버랜드 사건에서 검찰은 전환사채(CB)의 적정가격을 8만5000원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이 상무가 인수한 금액은 7700원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 상무의 주식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1조1천억원 수준”이라며 “결국 그가 취득한 이득의 10분의 1 정도만 사회에 환원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 상무의 재산을 돈의 액수로만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그가 삼성전자 전체 주식가액의 1%도 안 되는 적은 지분으로 사실상 그룹을 승계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돈의 규모는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핵심은 에버랜드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배임 문제와 관련돼 있다. 관련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다면 지분 보유 자체부터 정당성을 잃게 된다.
지배구조 개선?=삼성 해법의 또 한가지 열쇠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그 정점은 그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전권을 휘둘러온 구조조정본부다. 삼성은 이날 구조본에서 법무실을 분리 운영하고 재무 및 감사팀 인력을 축소하는 등 기능을 일부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구조본 인력은 현재 150명에서 100여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구조본의 규모를 조금 줄이거나 편제를 바꾸는 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구조본 개편의 핵심은 그 권한에 걸맞게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지주회사와 같은 법적 실체가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룹 전체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권한과 책임의 괴리 또는 불일치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금산법과 금융지주법 문제는 놓아두고 구조본 조정이나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취하 등을 제시한 점도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금산법은 국회에서 결정되면 수용하고, 지배구조 문제는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말로 피해갔다.
남은 과제와 전망=참여연대는 이날 삼성의 대국민 발표문과 관련한 논평에서 “삼성의 변화를 예고한 것일 뿐, 과거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과 지배구조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삼성이 외부의 지적에 대해 일부나마 수용한 점은 그동안의 태도에 비춰보면 진일보한 변화로 평가된다. 금융 계열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수를 과반수로 늘리고,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겠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어떻게 보면 ‘삼성 문제’는 이제 시작일 수 있다. 국민 정서와 사회적 요구를 일부나마 받아들인 점은 의미가 있지만, ‘삼성호’가 갈 길은 아직 멀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등을 둘러싼 법적 문제는 전혀 달라질 것이 없으며, 이런 문제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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