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08.29으로 1년 전보다 2.6% 상승했다. 공공서비스를 제외한 농축수산물, 공업제품, 집세 등이 가파르게 올랐다. 2일 서울의 한 식품전문매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6%로 지난 7월에 연이어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돼지고기·달걀·쌀·시금치 등 주요 장바구니 품목의 가격이 크게 뛰면서 추석 명절을 앞둔 ‘밥상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9(2015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과 견주어 2.6% 올랐다. 5개월 내리 2%대 오름폭을 보인 데다 지난 7월(2.6%)에 이어 두 달째 연중 최고치다. 공공서비스 가격이 0.7% 하락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역에서 물가가 올랐다.
실제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체감물가는 소비자물가 지수로 나타난 것보다 더 크게 뛰었다. 구매 빈도가 높은 품목 141개를 골라 작성해 ‘체감물가지수’로도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 3.4% 상승해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상승세가 가팔랐다. 생활물가지수는 이미 4개월째 3%대 상승률을 이어왔는데, 이는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더 가파른 밥상 물가 상승…“장보기가 무섭다”
혼자 사는 직장인 차아무개(34)씨는 요즘 부쩍 물가 상승을 체감하고 있다. 차씨는 “얼마 전에 마트에 갔다가 시금치 한 단에 6천원이 넘는 걸 보고 놀라서 도로 내려놨다. 달걀은 꼭 필요하니까 비싸도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건 안 사게 된다”며 “요즘은 찬거리 조금만 담아도 5만원을 훌쩍 넘어서 장보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를 보면, 1년 전 한 단(250g)에 4천원을 조금 넘던 시금치 가격은 현재 전국 평균 5920원 수준이다.
올 상반기 내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던 농·축·수산물은 최근 오름세가 둔화하긴 했지만, 주요 품목들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특히 밥상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달걀이 1년전에 비해 54.6%나 올랐고 마늘도 25.8% 상승했다. 돼지고기(11%), 국산 쇠고기(7.5%), 쌀(13.7%), 고춧가루(26.1%), 시금치(35.5%)도 값이 내려올 줄을 모르고 있다.
‘밥상 물가’가 오르면 저소득층 살림살이가 더 타격을 받는다.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먹거리에 쓸 돈을 아끼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에 소득 하위 20% 가구는 식료품·비주류음료에 월평균 24만4천원을 썼다. 전체 소비 지출의 21.2% 정도를 차지한다. 소득 상위 20% 가구는 식료품·비주류음료에 월평균 54만원을 썼지만,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2% 밖에 안된다. 지출 비중으로 치면 저소득층이 밥상 물가의 영향을 고소득층보다 2배 가까이 받는 셈이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서울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조아무개(49)씨는 요즘 가급적 차를 두고 다닌다. 지난해 8월 리터당 1200∼1300원대 하던 휘발유 가격이 1700원대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조씨는 “한 달 주유비가 작년 말까지 20만원 정도였는데 요즘은 30만원도 넘는다”며 “기름값 부담으로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휘발유(20.8%), 경유(23.5%), 자동차용엘피지(LPG·25.3%) 등 석유류 가격은 전년동월 대비 21.6%나 올랐다. 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보면 8월 리터당 휘발유와 경유 판매가는 각각 1646원, 1441원으로 1년 전보다 20.9%, 23.8% 상승했다. 가파른 상승세는 국제유가 영향이 크다. 이날 서부텍사스유는 배럴당 68.59달러로 지난 7월 75달러대에 비해 낮아졌지만, 1년 전 30∼40달러대에 비하면 2배 수준이다. 더욱이 환율도 지난달 1170원대까지 올라 상승세를 부추겼다. 이 때문에 교통 물가는 지난 4개월간 7∼9%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주거 부담도 늘었다. 집세는 1.6% 올랐는데, 2017년 8월(1.6%)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월세는 0.9% 올라 2014년 7월(0.9%) 이후 7년 1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보였고, 전세도 2.2% 뛰었다.
하반기부터 기저효과가 완화돼 물가가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던 정부 예측은 이미 빗나갔다.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물가 안정 대책도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추석을 앞두고 농·축·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오는 6일부터 지급하는 국민지원금도 물가 상승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여기에 원유나 곡물, 금속 등 국제 원자재가격도 공급 부족과 기상 악화로 인해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9월 소비자물가는 농산물 수급 여건 개선, 정부의 성수품 집중 공급 등 하방 요인이 있지만, 명절 수요, 가을장마·태풍 등 상방 요인도 병존하고 있어 물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 내놓은 추석 성수품 공급 확대 등의 대책에 기대고 있다. 기재부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서민물가가 안정될 수 있도록 명절 기간 농·축·수산물 수급관리에 총력 대응하겠다”며 “가격과 수급동향, 추석 민생안정대책 이행 상황을 매주 점검하고 필요하면 추가 대응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공급 쪽 요인으로 물가가 계속 오르는 가운데 추석, 국민지원금 등은 물론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소비 확대 등 수요 쪽 요인도 상승 압력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내에 한 차례 더 인상할 필요가 있고, 정부는 물가 안정에 필요한 공급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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