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지난 8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온라인 토론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신문로 탄소중립위원회 앞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대폭 상향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3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개막한 가운데 탄소중립을 위한 재정 계획에도 관심이 쏠린다. 탄소중립은 경제구조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만큼 대규모 재정투자가 필요한 동시에 화석연료 기반의 세입에서는 손실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2018년 탄소배출량의 40%를 2030년까지 감축한다는 내용의 ‘2030 탄소감축안’을 국제사회에 제출할 예정이지만, 이를 위한 중·장기 재정투자 계획과 세수 변화에 대한 대응책 모두 아직은 빈칸으로 남아있다.
‘큰 그림’ 없는 탄소중립 재정 투자
정부는 2022년도 예산안에서 ‘탄소중립 예산’으로 11조9천억원을 배정했다. 그러면서 “과감한 재정투입으로 내년을 2050년 탄소중립 이행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은커녕 8년 뒤로 예정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중·장기 재정 규모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7일 발간한 ‘2022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에서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전략에 대해 “탄소중립경제 관련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중기재정 소요계획은 제시되지 않아 탄소 중립 목표달성에 필요한 전체적인 재정 규모가 불명확한 실정”이라며 “사회 각 분야의 적극적인 탄소중립 이행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재정투자 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세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달성하려면 배출량을 연평균 4.2%씩 줄여나가야 한다. 이는 미국(2.8%)·영국(2.8%)·유럽연합(2%)과 견줘 높은 수준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큰 분야의 저탄소화 지원 △저탄소 산업 육성 △탄소중립 피해·취약계층 지원 등에 정부 재정이 적극적으로 투입돼 마중물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인 셈이다.
지금껏 정부가 제시한 기후대응 관련 중·장기 재정투자 계획은 2025년까지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73조4천억원을 투입한다는 ‘한국판 그린뉴딜 종합계획’이 전부다. 하지만 이는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큰 틀의 중·장기 재정투자 계획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탈탄소 흐름에 뛰어든 주요국들은 이미 중·장기 재정투자 계획과 재원마련 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유럽연합은 2050 탄소중립을 위해 2027년까지 1조 유로(약 1357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의 ‘그린딜’을 제시했다. 영국은 5년 주기의 ‘탄소예산’(Carbon Budget) 목표를 실행 12년 전부터 미리 결정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계획을 짠다. 이에 따라 영국은 2030년까지 민간부문을 포함해 120억 파운드(약 19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탄소중립 본격화되면 세수 감소 가능성
재정조달 방안 역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구체적 전망과 계획이 필요하다. 정부는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내년부터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는데, 탄소배출권 매각 등으로 창출한 수입을 탄소 감축 사업에 쓰는 구조다.
내년 기후대응기금운용계획안을 보면 기금 수입의 27.5%(7306억원)가 배출권 매각대금으로 채워진다. 예정처는 이에 대해 “배출권 매각대금은 배출권 가격 변동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 구조인데 향후 배출량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어 매각 단가가 연쇄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며 “기후대응기금의 수입이 감소하거나 목표만큼 확보가 어려울 경우, 이 기금을 통해 수행하는 재정사업에 대한 지출 또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와 내연기관차 소비에 기반을 둔 세목에서는 세입 감소가 예상된다. 현행법상 친환경차 이용자는 차량의 중량·가격과 관계없이 자동차세 10만원만 부과받고, 270만∼660만원에 이르는 저공해차 세제 혜택도 받는다. 반면 내연기관차 이용자는 구매 단계에서 개별소비세·부가가치세·취득세, 보유 단계에서 자동차세, 운행 단계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주행세 등을 부담하고 매 단계 교육세도 낸다. 앞으로 정부의 정책목표대로 친환경차 보급이 활성화되면 세수에 상당한 구멍이 뚫릴 수 있는 셈이다.
국토연구원은 2050년까지 정부의 친환경차 보급 활성화 목표가 달성된다면 2020년부터 30년 동안 총 85조1천억원의 세입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최근 영국 재무부도 탄소중립 정책 문건에서 ‘2050년 탄소중립’ 계획에 따라 많은 운전자들이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연료세, 자동차 소비세 등으로 거둬왔던 370억 파운드(약 60조원)의 세수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탄소중립으로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면 애초에 교정세 역할이 있었던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세수가 줄어들 것이고 점차 세수 구조도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며 “예상보다 에너지 전환이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세목에서 더 거둬서 감당해나가는 방식으로 점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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