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연기금을 굴리는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이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 10곳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국내 주요 기업의 탄소감축 문제에 주주로서 본격 관여해 나갈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의 자산운용사인 에이피지는 국내 기업 10곳을 ‘기후 포커스 그룹’으로 선정해 탄소배출 감축 실행을 제언하는 서한을 발송했다고 16일 밝혔다. 해당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제철, 에스케이, 에스케이하이닉스, 엘지(LG)화학, 엘지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포스코케미칼, 엘지유플러스, 에스케이텔레콤 등이다.
이들 10개사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에이피지는 “삼성전자의 경우 매출액 대비 탄소배출량이 8.7%(2020년 기준)에 달해 애플(0.3%) 등 세계 정보기술업체들에 견줘 높은 수준”이라며 “향후 탄소배출 비용 증가로 기업가치가 줄어들 위험이 있어 투자자로서 신속한 탄소감축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이피지는 이어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 선언을 한 반면 삼성전자는 탄소중립에 대한 목표가 없고 매출의 증가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에스케이하이닉스에 대해서는 탄소배출 절대량은 삼성전자보다 적지만 매출액 대비로는 3배 가량 높다고 지적했다. 엘지디스플레이의 탄소 배출량은 매출액 대비 28%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엘지화학, 포스코케미칼, 롯데케미칼 등 화학회사들 역시 매출액 대비 탄소배출량이 세계 동종업체들보다 높다고 진단했다. 또 엘지유플러스의 매출액 대비 탄소배출은 영국 이동통신사업자 보더폰의 2배로, 통신회사들은 공급망에 대한 탄소배출 감축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에스케이그룹 지주사 에스케이와 관련해서는 “주요 자회사(에스케이에너지, 에스케이이앤에스)를 포함하면 연결기준으로 탄소배출이 상당히 높게 나온다”며 “에너지 자회사들의 탄소감축 노력에 대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0개사 중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현대제철에 대해선 “철강생산 과정에서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2020년에는 매출이 늘지 않았는데도 탄소 배출이 급증했다”며 “향후 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CCUS)이나 재생에너지 활용으로 절대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유경 에이피지 총괄이사는 이번 서한에 대해 “우리가 투자하는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 영업활동을 해선 안 된다는 뜻”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선언에 그치지 않고 탄소배출량을 실제로 감축하고, 이행 계획을 주주와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책임투자를 구현하기 위해 기후 관련 주주제안도 검토 중이며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연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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