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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관악구 반지하 가족에게 지상으로 올라올 ‘주거 사다리’는 없었다

등록 2022-08-11 05:00수정 2022-08-12 00:28

2020년에서야 주거상향 대상에
33만 가구 중 1100여 가구만 혜택

공공임대 물량 부족 가장 큰 문제
제도 운영 인력·예산 지원 늘려야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폭우로 목숨을 잃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의 가족들의 빈소가 10일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발달장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동취재단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폭우로 목숨을 잃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의 가족들의 빈소가 10일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발달장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동취재단

지난 8일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 반지하 주택에서 애꿎은 시민들이 죽어나갔다. 열악한 주거 여건이 목숨까지 앗아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정부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수설비 개선은 임시방편일 뿐, 반지하 가구가 땅 위 ‘안전한 집’으로 이동할 ‘주거 사다리’를 충분히 갖추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정부의 핵심 주거 사다리 정책인 ‘주거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은 공공임대주택 물량 부족과 열악한 주거복지 행정 인프라 문제로 불충분한 실정이다. 33만 반지하 가구(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의 삶은 한두시간 폭우에 좌우될 만큼 위태롭기만 하다.

재난보다 느린 주거 사다리

정부는 주거기본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지난 2007년부터 주거취약계층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주거상향 지원사업에 ‘시장 등이 홍수·호우 등 재해 우려로 이주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하층’ 주택이 포함된 것은 2020년부터다. 반지하는 쪽방이나 고시원과 달리 ‘주택’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 해 80가구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한 데 이어서 지난해에 1056가구가 이주했다. 지난해 전체 지원 대상자 6026가구 가운데 17.5%가 반지하 가구일 정도로 수요가 많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인데, 그만큼 제도 개선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의 ‘사각지대’도 작지 않다. 정부의 주거상향 지원사업 대상자는 정해진 소득 기준 이하이면서 동시에 ‘무주택자’여야 한다. 잦은 이사가 부담스러워 반지하 ‘자가살이’를 택한 가구는 소득 수준이나 주택 가격에 무관하게 제도 밖으로 밀려나 있다. 당장 이번에 참변을 당한 신림동 일가족(70대 노모, 40대 발달장애인 큰딸, 40대 직장인 작을딸, 13살 손녀)도 없는 살림에 전월세 난민이 되는 것은 피하고자 이번에 침수된 주택을 7년전 매입해 살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공공임대주택은 늘 부족합니다”

‘안전한 집’으로 이주가 시급한 주거 취약계층은 넘쳐나는데 공공임대주택 물량은 늘 부족하다. 그나마 지난 문재인 정부 들어 ‘주거복지로드맵 2.0’ 설계와 함께 주거상향 사업 확대가 추진되면서 2016년 1070가구에 그쳤던 공공임대주택 입주 가구가 2021년 6026가구로 크게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난달 20일 국토부가 올해 사업 대상 가구를 1만가구로 늘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길제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작년 947가구에 이어 지난해에는 1996가구가 전국 30개 시·군·구에서 입주대기 상태로 남았는데 이는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이주가 필요한 주거취약계층이 입주할 수 있는 주변 공공임대주택 ‘공실’을 찾아내 연계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한계가 명확하다. 앞으로는 공공임대 물량 계획을 세울 때 주거상향 지원사업 수요를 파악해 이를 우선 반영하는 등 제도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공동대표도 “주거상향 사업 대상군이 쪽방, 고시원, 노숙인 시설에서 반지하, 가정폭력 피해자, 출산 예정 미혼모 등으로 계속 늘어왔는데, 이에 견줘 공공임대주택 확보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제 발굴 중요한데 인력·예산은 ‘불안불안’

주거사다리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인력과 예산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주거복지재단이 2018년 수도권 비정상거처(고시원, 쪽방촌 등) 거주자 1만2954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주거복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 1순위(응답자의 29.4%)가 ‘제도 존재 자체를 몰라서’였고, 2순위(23%)가 ‘신청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였다. 이 때문에 고령층 등 제도 접근성이 낮은 주거 취약계층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발굴’하고 상담, 입주지원, 사후관리 등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지자체의 위탁을 받아 이런 역할을 하는 ‘주거복지센터’는 2020년 말 기준 전국에 46곳뿐이고 센터 1곳당 평균 3.3명이 일하고 있다. 그마저도 서울시가 26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경기도는 5개, 인천시는 2개 등 다른 지역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토부는 광역·기초 지자체가 최소 1개씩 센터를 만들어 2027년에는 전국에서 243개 센터가 운용되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센터 운영에 필요한 예산·인력 지원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더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센터 설립·운영에 국비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 취약계층에겐 부담이 큰 보증금과 이사비 지원을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부동산원 등이 조성한 사회공헌기금으로 보증금 50만원과 이사비 20만원을 지원하는데, 지난해의 경우 8월에 기금이 고갈돼 주거상향사업 자체가 일시 중단된 바 있다. 이길제 부연구위원은 “기후 위기로 인해 반지하 주택을 비롯한 주거취약계층이 맞닥뜨린 위험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주거상향 사업이 더 신속하게 필요한 사람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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