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택공사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 동탄 공공임대주택 복층형 세대 내부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공공임대주택이 한국 사회에 자리잡은 지 약 30년. 고시원 화재 등 참사가 생기면 정부와 정치권은 앞다투어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내건다. 주거사다리를 스스로 놓을 수 없는 취약계층에 공공임대주택이 ‘최선의 대안’이란 것은 이미 나와 있는 진단이다. 1989년부터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행복주택, 신혼희망타운 등 간판을 바꿔 달며 공급된 공공임대주택이 약 360만호(누적). 적지 않은 규모인데 여전히 85만 주거취약층 가구가 쪽방에서, 고시원에서, 그리고 반지하에서 산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18일 국토교통부 통계누리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 공공임대주택 재고량(공실을 포함해 현재 운용되는 공공임대주택 수)은 173만7천호다. 1989년부터 2020년까지 공급된 359만3천호의 절반에 못 미친다. 단기간 임대 뒤 ‘분양 전환’ 되는 공공주택과, 민간 소유인 주택을 공공이 임차한 뒤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전세임대’ 물량 등이 합쳐지면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실적이 부풀려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약 360만호 가운데 절반이 넘는 주택이 민간에 소유권이 넘어갔거나 애초에 민간 소유였다는 뜻이다.
공공임대주택 173만7천호 가운데서도 민간 소유(예정)인 주택이 30%를 넘는다. 5년 또는 10년 뒤 분양되는 임대주택이 각각 21만5천호(12.4%)와 3만6천호(2.1%)이고, 전세임대가 28만3천호(16.3%)다. 이를 빼면, 공공이 소유하며 20~30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만 추리면 119만2천호에 그친다. 박준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는 “주요 선진국의 소셜하우징(사회주택·한국의 공공임대주택)처럼 20~30년 이상 제공되는 공공임대주택으로만 따지면 한국은 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를 한참 밑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국토부가 보도자료를 내어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8% 수준(재고량 173만7천호 기준)으로 오이시디 평균에 도달했다”고 팡파르를 울렸지만, 이는 ‘착시’라는 것이다.
2021년 4월 공개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현충로 공공전세주택 모습. 연합뉴스
물론 분양 전환 임대주택의 경우 자산이 많지 않은 청년·신혼부부 등에게 자기 집을 소유할 기회를 정부가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정된 재원을 이유로 더디게 확보되는 공공주택의 일부가 분양주택으로 채워지면 영구임대와 같은 더 가난한 주거취약층의 임대주택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몇번 영구임대 신청해봤지만 점수가 모자르다고 선정이 안 됐어요. 제 소원은 겨울에 따뜻한 물에 목욕하는 거예요.” 온수 없는 낡은 주택에서 혼자 생활하는 66살 지적장애인 ㄱ씨가 2020년 한국도시연구소의 ‘비적정 주거지 주거상황 심층조사’ 때 한 말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분양주택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 첫집’도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서울 도심 정비사업이나 3기 신도시 개발사업 등에 용적률을 높여주고, 대신 늘어나는 주택 일부를 기부채납 받아 청년, 신혼부부,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시세의 70%로 분양할 계획이다. 5년간 50만호라는 적잖은 물량이 공공임대주택이 아닌 공공분양주택으로 공급되는데다 청약 요건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40~160% 이하’로 비교적 형편이 넉넉한 가구까지 아우른다. 2021년 도시근로자 1인 가구 월평균 소득의 140%는 418만8283원.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 문재인 정부의 신혼희망타운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는 청년원가주택 등을 들고나오면서, 청년·신혼부부가 아니면 공공주택 정책 앞에 명함도 못 꺼내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의 또 다른 유형인 ‘전세임대’도 주거취약층을 위한 주거사다리 노릇을 제대로 못 한다. 보증금 지원 상한선이 수도권의 경우 1억2천만~1억3500만원 수준이라 최근 전세가격이 급등한 서울에서는 변변한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전세임대 대상자로 선정되고도 반지하에서 머무는 이유다. “지상으로 가고 싶었는데 집이 그렇게 많지가 않더라고요. 집을 구하는 건 급한데 금액(보증금 지원 상한선)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까요.”(한국도시연구소 2020년 보고서 중 30대 여성 ㄴ씨)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전세임대란 이름으로 민간 임차시장에 기대 손쉽게 공공임대주택 공급 실적을 늘린 결과, 복지 대상자들의 손을 거쳐 집주인들에게 세금이 흘러가는 구조만 고착화됐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반지하 대책을 내놓은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사동 한 반지하 가구가 폭우에 침수된 세간살이를 들어낸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주택도시기금의 잉여금을 활용하면 주거 취약층을 위한 건설임대·매입임대주택 공급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약저축액 등으로 조성되는 주택도시기금은 지난 10년 사이 2.5배가량 늘어 2021년 결산 기준 총 116조9천억원이 운용됐다. 이 가운데 사업에 쓰이지 못하고 남아 주식이나 다른 기금 예탁, 은행 예금, 국외 채권 등에 투자된 잉여금이 47조4천억원으로, 같은 해
사업비 31조6천억원보다도 많다. 박준 교수는 “주택도시기금의 목적은 수익률을 높이는 게 아니라, 공공주택 건설 등에 재원으로 쓰이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활용안을 정부가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 16일 “올 4분기 중 공공임대주택 공급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발표된 ‘110대 국정과제’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는 5년간 연평균 10만호였다. 최근 3년(2018~2020년) 연평균 공급량 14만호보다 적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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