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상 거처 거주자의 완전 해소’→‘비정상 거처 가구에 대한 이주지원 강화’
반지하, 쪽방, 고시원 등 비정상 거처 가구를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은 두달여 만에 확 바뀌었다. 2월 말 공약집에선 ‘완전 해소’를 외쳤는데, 5월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지원 강화’로 대폭 후퇴했다. 짧은 시간 안에 정책 목표가 달라진 것은, 대선 공약이 주거상향 전략이 없는 ‘말’뿐이었음을 보여준다.
‘전략 부재’는 서울 반지하 일가족 사망 사건 뒤 내놓은 대책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반지하 신규 건축을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은 20년간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했다가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정은 나 몰라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비정상 거처 거주자에 대한 공공임대 우선공급을 지난해 6천호에서 올해 연 1만호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는 “85만가구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왔다.
특히 다급히 대책을 내놓으면서 그 초점을 ‘정비 사업’(재건축·재개발)에 맞춰 주거취약층의 불안을 더 키운다는 게 문제다. 서울시는 15일 노후 공공임대주택을 2042년까지 재건축하면서, 용적률 상향으로 늘어나는 주택을 반지하 가구에게 공급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국토부는 “재해취약주택 밀집 지역은 정비구역 지정요건 완화, 용적률 상향, 방재시설 설치 지원 등 정비사업 여건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비사업 지역에서 현재 사는 이들의 ‘이주 대책’은 없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이주·정착 대책 없이 개발하면 노후 공공임대주택이나 반지하에 살던 사람이 옥탑이나 고시원으로 옮겨가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함께 재해취약주택을 실태조사하고 공공임대주택 이주 수요를 파악하겠다고도 밝혔지만, 이 또한 ‘뒷북’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임대주택 이주 희망자의 소득, 연령, 가구원 수 등이 포함된 ‘대기자 목록’이 있다면 주거취약층의 규모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준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는 “유럽처럼 공공임대주택 대기자 명부제를 도입하라는 요구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한국은 공실이 생길 때마다 새 공고를 내 입주자를 모집하는 방식을 고집한다”며 “공공임대주택 수요를 모르니 체계적인 공급 계획을 짤 동기도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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