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동 일대 빌라촌.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수도권 아파트 한동을 통째로 소유한 임대인 ㄱ씨는 담보대출 연체로 주택 전체가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그는 공인중개사와 말을 맞춰 이 사실을 숨기고 임차인 30여명과 전세 계약을 맺었다. 경매가 시작되면서 이들 임차인은 보증금을 떼였다.
국토교통부가 이처럼 ‘전세사기’가 의심되는 거래 1만3961건을 경찰청에 제공했다고 24일 밝혔다. 국토부·주택도시보증공사(보증공사·HUG)·한국부동산원이 지난달부터 특별단속을 벌여 분석한 결과다. 건축주와 중개사가 짜고 ‘깡통전세’ 세입자를 모집한 뒤 잠적하거나, 수백채를 임대하면서도 보증금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집주인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최근 주택시장이 하강기에 접어들면서, 보증금 돌려줄 능력 없이 여러 채를 사들였던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떼먹을 위험이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우선 보증공사의 ‘집중관리 채무자’ 200명의 정보를 경찰에 공유했다. 이들은 보증공사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신 내어준(대위변제) 뒤에도 장기간 갚지 않은 채무자들이다. 국토부는 이 중 채무 규모가 큰 26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했다. 이들이 체결한 임대차 계약만 2111건, 주택도시보증공사에 갚아야 할 대위변제액은 4500억여원에 이른다.
보증금 보험 가입의무를 위반해 행정처분을 받은 임대사업자 9명의 정보도 경찰에 전달했다. 현행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등은 모든 등록임대주택에 대해 보증공사의 보증금 보험을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가 매겨진다. 이번 단속에서는 최대 200여명의 임차인에게 전세를 주고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대사업 법인이 적발됐다.
이외에도 국토부는 거래 구조 상 전세사기가 의심되는 계약 1만여건(임대인 825명)을 경찰에 넘겼다. 집주인 한명이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100% 이상인 임대차 거래 여러건을 맺거나, 전세계약 직후 주택을 한꺼번에 처분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번에 적발된 빌라 건축주 ㄴ씨의 경우 주변 매매시세보다 비싼 전세금에 세입자 500여명을 모아, 총 1000억여원의 보증금을 받았다. 세입자들이 한꺼번에 전세금 반환을 요구하면 돌려줄 수 없는 상태였다. 주변 공인중개사들은 전세금의 10%씩을 나눠갖는 조건으로 세입자 모집을 도왔다. ㄴ씨는 계약 직후 다른 임대인 ㄷ씨에게 모든 주택을 팔고 잠적했다. ㄷ씨 역시 자기자본 없는 ‘무자력 임대인’이어서 세입자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주인은 물론 공모한 공인중개사도 사기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손바뀜이 없던 신축 빌라의 경우 기존 매매·전세시세가 형성돼있지 않아 세입자들이 과도하게 높은 보증금에 전세금에 계약할 위험이 있다. 주변 빌라의 시세와 면밀히 비교해 계약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번에 공유받은 자료로 기존 신고된 사건들의 혐의점을 잡아내고 새로운 사건을 적발·수사하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이르면 다음달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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