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 불이행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피에프)의 연쇄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피에프 대출과 엮인 건설사, 금융기관 등이 금리 상승에 레고랜드발 시장 불안까지 겹쳐 도미노식 부실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피에프 대출에서 파생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시장 신뢰가 떨어지면서 기업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찾는 단기금융시장 돈줄도 막히고 있다. 금융당국은 2년 전 조성했던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를 재가동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0일 ‘시장안정을 위한 특별 지시사항’을 통해 “1조6천억원의 채안펀드 여유재원을 통해 신속히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을 재개하고, 추가 캐피탈콜(투자 결정 시 필요 자금 조달)도 즉각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2020년 3월 코로나가 발생하자 20조원 규모의 채안펀드를 조성해 회사채나 우량기업 기업어음, 금융채 등을 사들이면서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 2년 만에 채안펀드를 재가동한 것은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달 28일 강원도가 산하 공기업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레고랜드 건설 관련 부동산 피에프 대출에 대한 보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이 부도처리된 것이 발단이다. 부동산 피에프는 금융기관이 개발사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시행사에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것이다. 유동화전문회사(SPC)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채권을 양도받아 이를 기반으로 다시 증권사 보증 아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투자자를 끌어모은다. 가장 첫 단계인 부동산 개발에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피해가 확산된다.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피에프 대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관련 투자는 말라붙고 있다. 시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막힌 건설사, 증권사 등의 부도설, 매각설 등의 소문까지 퍼지는 모양새다.
특히 부동산 피에프 대출 유동화증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기업어음 시장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레고랜드 유동화증권도 기업어음 형태였다. 20일 금융투자협회 집계를 보면, 기업어음 A1등급 91일물의 금리 최종호가는 전날 4.10%를 기록해 지난달 말(3.27%)에 비해 0.83%포인트 뛰었다. 2009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그사이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점을 고려해도 상승폭이 크다. 같은 기간 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3.24%에서 3.85%로 0.6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기업어음으로 대표되는 단기금융시장은 통상적으로 기업 부도의 징후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이다. 회사채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기업들이 만기가 비교적 짧은 어음이나 전자단기사채를 통해 연명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돈줄이던 이 시장에서마저 유동성이 쪼그라들면 기업들이 하나둘 쓰러지며 다른 시장으로도 위기가 전이되는 것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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