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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학원 압박’ 벗어던진 도시 아이들…“농촌으로 유학왔어요”

등록 2022-11-07 09:07수정 2022-11-07 09:23

⑧‘관계인구’로 활력 찾은 한드미마을
충북 단양 소재 농·산촌 체험 마을
농촌유학 사업 통해 폐교 되살리고
지속 교류로 젊은층 유입·관계인구 늘려
지난달 15일 한드미마을에서 3년 만에 열린 가을한마당 축제에 참석한 학부모와 유학생들이 마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자녀의 농촌유학을 먼저 경험한 학부모의 소개로 마을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지난달 15일 한드미마을에서 3년 만에 열린 가을한마당 축제에 참석한 학부모와 유학생들이 마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자녀의 농촌유학을 먼저 경험한 학부모의 소개로 마을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중부 내륙에 한파주의보가 내렸던 지난달 18일 아침, 충북 제천시 봉양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양군 가곡면 소백산 자락의 한드미마을을 찾았다. 농·산촌 체험을 하기 위해서다. 한때 80여가구로 북적이던 이 마을엔 현재 48가구가 모여 산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없다면 여느 농·산촌과 다를바 없는 곳이다. 아이들은 마을 리더인 당나구샘(별칭)의 인솔 하에 ‘삼굿구이’를 시작했다. 삼굿구이는 쌀쌀한 날씨에 딱 들어맞는 체험이다. 삼을 삶아내던 전통적 방식으로 흙구덩이에 불을 지피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계란 등을 익혀 먹는 조리법이다. 뜨거워진 흙을 헤치고 먹을거리를 꺼내는 아이들의 볼도 빨갛게 익어갔다. 오후에는 목공예와 율무 팔찌 만들기 체험을 했다.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얻은 것들이다.

방과후 한드미마을 농촌유학센터 강당에서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는 유학생들.
방과후 한드미마을 농촌유학센터 강당에서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는 유학생들.

취재진이 한드미마을을 찾은 날, 도시의 아이들을 태운 버스 행렬이 마을을 빠져나갔다. 고즈넉할 것 같았던 마을은 학교 수업을 끝낸 방과후 아이들로 다시 들썩거린다. 서울·경기·부산 등 대도시에서 이 마을로 유학온 학생들이다. 대부분 마을 근처의 가곡초교 대곡분교에 다닌다. 아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꾸벅 인사하고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농촌유학센터로 갔다. 현재 한드미마을에는 전국 각지서 유학 온 초등학생 23명, 중학생 18명 등 모두 41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곳 아이들은 가곡초교 대곡분교와 단양소백산중학교에서 정규수업을 듣는다.

도시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농촌마을로 유학을 온 것일까? 경기 광주시에서 유학온 은다율(13)군은 “학원 스트레스가 없고 자연 속 체험을 할 수 있어 좋다. 압박감이 없으니까 공부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대곡분교 6학년인 은군은 올해 유학 3년차이다. 매주 화요일 방과후에는 기타를 배운다. 한드미마을로 유학온 학생들 중 올해 초등학교 졸업반인 6학년생은 은군을 포함해 모두 8명, 이들은 졸업 뒤에도 도시로 돌아가지 않고 마을 근처 중학교로 진학할 예정이다. 이 마을 농촌유학센터를 이끌고 있는 정문찬(64) 대표는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 있겠지만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농촌의 가치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마을 아이들은 정 대표를 ‘당나구샘’이라고 부른다.

한드미마을은 농림부와 교육부에서 공동 지정한 농어촌 인성학교다. 여성가족부로부터는 초·중등 수련프로그램을 인증받았다. 올 여름 농촌인성캠프는 초등 대상 40명 정원으로 5박6일 간 모두 3차례 진행됐다. 농촌인성캠프는 자연 속에서 함께 뛰놀며 생태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감수성을 회복하는 활동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아이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건강한 성장을 돕는 게 목적이다.

자연 속에서 도시와 농촌 잇는 유학생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삶의 지혜 배워
“도시로 돌아가도 농촌 정서 못잊을 것”

농촌유학 교실은 캠프 활동과 다르게 운영된다. 아이들이 산과 들에서 마냥 뛰어놀기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규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취침 전인 오후 9시반까지 유학센터의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요일별로 전문 강사에게 난타, 사물놀이, 관악기, 현악기 등 악기 연주법을 배운다. 생태체험과 과학동아리 활동 등은 지도교사 인솔 아래 이뤄진다.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과 수업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스스로 깨닫는다.

한드미마을은 지극히 평범한 농·산촌 마을이다. 소백산 자락을 따라 굽이 돌면 한드미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어귀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소백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방문객을 반겨준다.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물레방아를 돌아 정겨운 돌담길을 지나면 산천어가 뛰어노는 개울이 있고, 총총 밤이면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지는 소박한 마을이다. 한드미마을은 옛것을 살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삼굿구이에서 뗏목 만들기, 비석치기까지 어른들도 어릴적 고향에서 한번쯤 해봤음직한 놀이문화를 재현한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한드미마을은 한해 3만명의 방문객이 찾는 농·산촌 체험 마을이 됐다.

소백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한드미마을 한가운데를 흐른다. 옛 빨래터와 돌담길을 지나 힘차게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정겹다.
소백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한드미마을 한가운데를 흐른다. 옛 빨래터와 돌담길을 지나 힘차게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정겹다.

한때 이 마을도 고령화와 청년유출, 인구감소 등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마을에 변화의 물꼬를 튼 이가 당나구샘 정 대표다. 그 역시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났다가 1998년 돌아왔다. 마을 이장이 되고나서 뭔가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걸 직감했다. 그러나 힘에 부쳤다. ‘자녀 교육과 일자리 문제로 고향을 떠나는 이들을 무슨 수로 붙잡을 수 있단 말인가?’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해서는 같이 일할 ‘젊은 사람’이 필요했다. 먼저 자녀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설상가상 마을 근처 학교는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 결정이 내려졌다. 학교를 살리는게 급선무였다. 학교가 사라지면 자녀를 둔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빠져나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폐교를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시작한 것이 한국농어촌공사의 지원을 받은 농촌유학 사업이었다. 입시 위주 경쟁과 학원 스트레스가 컸던지 도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설립 첫해 12명의 도시학생들을 유학생으로 받아들인 이후 유학생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다.

한드미마을의 농촌유학 사업은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되살렸을 뿐 아니라 유학생과 교사들이 마을에 들어와 인구가 증가하는 디딤돌이 됐다. 마을가꾸기 사업을 시작한 지 십수년이 흐른 지금, 한드미마을의 가구수는 33가구에서 48가구로 늘었다. 다양한 도농교류 사업을 통해 마을 인구가 늘어나면서 가곡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마을이 됐다. 다른 마을에 견줘 젊은 인구의 유입이 많고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관계인구’를 늘리고 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어떤 이는 마을 식당의 주방장으로 취업해서 왔다가 정착했고, 마을 사무장으로 귀농한 부부가 베이커리카페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농촌 유학생의 학부모 중에서도 마을에 정착한 이들이 있고, 그 중에는 펜션 사업을 하러 이주한 사례도 있다. 다양한 경로로 마을에 인구가 유입되고 이들이 마을 활성화의 인적 자원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성주인 박사는 ‘관계인구 확대와 농산어촌 마을 변화 사례’ 보고서에서 “귀농귀촌 이주는 일시에 이뤄지기도 하지만, 도시민들이 상당 기간 마을과 교류를 지속해오면서 농산어촌에서 생활할 준비 과정을 마친 후 주거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잘 보여주는 게 한드미마을 사례”라고 했다.

한드미마을은 한해 농·산촌 체험을 위해 3만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마을 근처 들녘을 돌아보는 학생들.
한드미마을은 한해 농·산촌 체험을 위해 3만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마을 근처 들녘을 돌아보는 학생들.

토요일인 10월15일 한드미마을에선 ‘2022 가을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만에 열린 대면 축제였다. 멀리서 한걸음에 달려온 학부모들로 강당이 가득찼다. 아이들은 연극과 공연, 장기자랑으로 기량을 펼쳤다. 학부모들은 활달하면서도 소탈하고 넉넉하게 바뀐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농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가고 있다.

한드미마을의 미래는 아이들이다. 도시와 농촌을 잇는 유학생들은 자연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익힌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유학센터 앞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아봤다. 소백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소리와 더불어 온갖 새들의 지저귐, 바람소리가 청명하게 들린다. 자연 그대로의 정취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정 대표는 한드미마을의 매력에 대해 “농촌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더라도 이곳에서 느꼈던 여유로운 마음과 배려, 농촌의 정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양/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 사진 한드미농촌유학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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