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준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작은 도미노라 해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큰 도미노까지 쓰러뜨릴 수 있잖아요.”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지난 4일 만난 곽준희 연구위원은 현재 금융시장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플레이션, 미국의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레고랜드 사태, 그리고 자금시장 경색까지. 낱개의 사건들이 서로를 위협하며 위태롭게 서 있다. 정부가 지난달 23일부터 ‘50조원 플러스 알파’ 규모의 유동성 대책을 불어 넣었지만, 시장에서는 온기를 체감하기 아직 이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장이 언제쯤 안정을 찾을지 알기 위해서는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사건을 이해하고, 그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곽준희 연구위원은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자본시장과 금융안정, 그림자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사태가 왜 이렇게 번졌는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그림자금융처럼 놓치고 지나갈 문제는 없는지 들어봤다.
―자금시장의 ‘돈맥경화’ 어디부터 시작된 건가.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네 차례 연속으로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정책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금리가 올라간다는 건 자금 조달 비용이 비싸지는 것이다. 시장이 불안정해지니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같이 믿을만한 경제 주체에게 투자 자금이 쏠리고, 그보다 신용이 낮은 경제주체는 더 높은 이자(금리)를 제시해야만 자금을 얻을 수 있다. 금리의 격차(스프레드)가 벌어지고 시장이 불안정해진 것이다.”
―그러다가 9월28일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조차 안전하지 않다니 시장이 놀란 거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조금만 자극해도 크게 신경질이 나곤 한다.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조 단위의 자금을 투입하면서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레고랜드 개발은 부동산 피에프를 통해 진행됐다. 부동산 피에프는 부동산 개발로 벌어들일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돈을 미리 빌리는 금융 기법이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를 하지 못하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발 계획이 어긋나면서 피에프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관련 금융기관의 건전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부동산 피에프는 구조가 복잡하고, 등장인물이 많다. 시행사가 건설사 보증 등을 통해 대출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대출기관은 그 대출채권을 특수목적회사(SPC)에 양도한다. 특수목적회사는 이 채권으로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매각한다. 자산유동화증권 발행 과정에서 증권사도 채무보증을 서고 수수료를 얻는다. 레고랜드 개발은 부동산 피에프의 전형이다. 강원도가 설립한 중도개발공사(GJC)는 특수목적회사인 아이원제일차에서 2050억원을 대출받고, 아이원제일차는 그 대출 채권을 기초로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강원도가 보증을 서 신용도를 높인 이 어음은 비엔케이(BNK)투자증권을 통해 증권사 등에 판매됐다.(그림 참조)
―왜 이런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나.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개발의 수익을 기대하고, 돈을 빌려주면 대출 채권이 생긴다. 그리고 이 대출 채권을 유동화하면 다른 곳에서 돈을 또 끌어오기 쉬워진다. 레고랜드 하나를 담보로 돈을 빌리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 관련된 여러가지 개발 건을 묶으면 더 잘 팔릴 수 있는 것이다. 계란이 하나밖에 없으면 계란 하나가 깨지면 모든 걸 다 잃는다. 그런데 계란 100개를 담아 100분의1씩 지분을 가진다면 계란이 하나가 깨져도 1%만 잃는 셈이 된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는 자금을 효율적으로 빌려오기 위해서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이라는 것을 발행해 위험을 분산시키고 채무보증을 서는 것이다.”
특히 지난 몇년간 부동산 피에프는 제2 금융권에서 급증했다. ‘그림자 금융’의 주요한 사업영역인 셈이다. 그림자금융은 은행 시스템 밖에서 은행 수준의 건전성 규제는 받지 않고 신용을 중개하는 활동을 말한다. 증권사, 카드사, 캐피탈사, 저축은행 등이 그런 활동을 한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유동성이 늘었고,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자금이 수익률이 높은 부동산으로 몰려들었다. 한국금융연구원 집계를 보면, 올해 9월 기준 국내 부동산 그림자 금융 규모는 842조3천억에 이른다. 2018년 말(449조원)과 비교했을 때 4년 만에 87.3% 늘었다. 특히 부동산 피에프 관련 익스포져(위험 노출액)는 같은 기간 95조6천억원(104.8%) 증가했다.
―왜 비은행권이 더 위험한가.
“올해 7~8월 한국기업평가에서 낸 자료가 있다. 피에프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자기자본 대비 얼마인가 양적으로 살펴보고, 어떤 종류의 피에프에 투자했는지, 분양률은 얼마인지 같은 질적인 지표까지 종합해서 위험을 진단해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적으로는 캐피탈사와 저축은행이 부실 위험이 높다고 나왔다. 증권사는 부실화 가능성에 대해 관찰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한국기업평가는 ‘금융업권 부동산 피에프 리스크 점검’이라는 제목의 해당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에 따른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과거 저축은행 부실 사태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2011년 2월 금융위원회가 부실저축은행 7곳을 영업정지하면서 시작된 저축은행 부실 사태는 부동산 피에프에서 비롯됐다. 서민금융 업무보다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집중하다 벌어진 일이다. 이로 인해 금융당국이 부동산 피에프를 본격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지만 위험 추구 행위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게 쉽지는 않다.
―정부의 자금시장 안정화 대책은 어떻게 보나.
“정부 지원은 어느 정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유동성이 막혀서 차환이 안 되면 위기가 전염되기 때문이다. 도미노가 쓰러지지 않게 하는 건 의미있다. 앞으로는 어디가 약한고리인지 파악해서 그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적정한 규모의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 다만, 균형은 잡아야 한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가 계속 도와주다 보면 ‘일 터지면 정부가 세금으로 막아주겠지’ 인식이 생기게 되고 그럼 반성없이 위험추구 행위를 계속 반복하게 되니까 그렇다. 누구를 어느 정도 지원해야 하는가 잘 판단해야 한다. 이 위기가 지나면 위험자산 비중이나 충당금 적립 규제도 더 엄격하게 손봐야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걸 왜 알아야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부동산 피에프는 부동산 개발 금융의 하나다. 부동산 개발하는 사람들이 거액의 돈을 저렴하게 빌려와서 부동산을 개발하고 누군가에게 분양해서 수익을 얻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증권사 같은 금융기관은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수수료를 가져간다.
문제는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다보니 관련 시장들의 금리도 올라가고, 그래서 다른 금융기관도 금융비용이 올라가고, 그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보통의 서민들도 대출받을 때 금리를 더 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얼마나 지원해줘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면 모두가 피해를 보니까 어느 정도 도와줘야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도와줘야 하는가 문제다. 지원에 쓰이는 돈은 정부재원이고 결국 세금이기 때문이다.
이자비용이 올라가든 정부재원이 들어가든, 수익을 추구한 사람들이 이득을 얻고 빠진 다음 뒤처리 과정에서 남은 사람들이 그 부담을 나눠가지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 가져간 수익이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끼치는 상황이 왔으니 집중해서 지켜봐야 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