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다시 본격화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추가 발의된다. 삼성전자 주식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지면 막대한 혼란을 야기한다는 삼성생명 쪽 우려에 퇴로를 마련해주자는 취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다. 개정안은 법률 제∙개정으로 특정 주주가 지분을 강제 매각해야 하는데 매수자를 찾을 수 없는 등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주권상장법인이 특정 주주로부터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 뼈대다. 이 경우 매입한 자사주는 지체 없이 소각해야 한다.
이 법안은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의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논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한도를 취득 당시 가격(취득원가)이 아닌 현재 가격(시가)으로 평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가 평가에 따라 삼성생명은 총자산의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야 하기 때문에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가 타격을 입는다. 이에 삼성생명은 “수십조원의 삼성전자 주식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면 큰 충격이 예상되고, 주가 약세로 개인투자자에게 피해가 우려된다”는 주장 등을 앞세워 보험업법 개정안을 반대해왔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700만 삼성 주주 지킴이법!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삼성생명법과 함께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삼성전자가 공개매수가 아니라 일종의 블록딜(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주식 대량 매매)이 가능해지고 주가변동으로 인한 혼란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제165조의3)을 살펴보면, 자사주는 공개매수만 가능하다. 특정주주로부터 자사주를 매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전자는 삼성생명이 보유했던 주식을 자사주로 소량 매입해 소각하는 과정을 최대 7년의 유예기간 동안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이용우 의원실은 “공개매수를 통해 불특정한 제3자가 매입하는 경우 대주주에 의도치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사는 방안이 삼성그룹에 유리하다”며 “또한 자사주 매입 시 소각시켜야 하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과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도 있어 모두에게 좋은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개정안은 법 악용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위원회의 사전 승인도 얻게 했다. 특정 주주가 시장에서 매수자를 찾기 어려워 자사주를 매입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이에 대한 사실 여부 검증을 진행할 주체로 금융위를 둔 것이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과거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내부 문건에서도 거론된 바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2012년 12월 작성된 35쪽짜리 삼성 내부 문건 `그룹 지배구조 개선방안 검토’에 따르면, 삼성은 `금산분리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요구가 예상되므로 중장기적 해소가 필요하다’며 삼성전자가 삼성생명 보유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2014년 4월 보험업법 개정안이 최초 발의된 뒤 2017년 8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도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의 길을 터주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용우 의원은 “삼성생명법이 통과될 경우 주식시장과 소액주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게 법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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