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법제처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자산 규모 기준을 늘리거나 국내총생산(GDP)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개편할 방침인데, 규제 대상이 소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외국인을 대기업 집단 총수(동일인)로 지정할 근거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공정위는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위 주요 과제를 업무 보고했다.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을 완화할 계획이다. 현재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돼 기업집단 현황이나 대규모 내부거래 등의 공시 의무를 지고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등의 규제를 받게 된다. 김정기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제도가 도입된 2009년 이후 자산 기준이 변하지 않아 규제 대상이 2009년 48개에서 지난해 76개로 과다하게 늘었다”며 “중견기업들의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을 지디피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거나 기준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국내총생산의 0.2% 또는 0.3%로 할 수 있고, 자산 기준액을 6조원이나 7조원으로 늘리는 방법도 있다”며 “(학계·법조계·이해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기업집단 정책네트워크의 의견을 듣고 저희도 연구해서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령 자산 기준액이 7조원으로 높아질 경우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지난해 5월 기준 76개에서 56개로 20개나 줄어든다. 크래프톤, 삼양, 애경, 한국지엠, 하이트진로 등이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공시대상기업집단보다 더 강한 규제를 받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기준은 현재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인데, 내년부터는 ‘자산규모 국내총생산의 0.5% 이상’으로 바뀔 예정이다.
공정위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를 거쳐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기 위한 기준도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범석 쿠팡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염두에 둔 조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부위원장은 “외국인 동일인 지정은 쿠팡만 관련된 사안은 아니고 쿠팡 때문에 추진된 것도 아니다”며 “언젠가는 동일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동일인의 배우자나 2·3세가 외국인 또는 이중국적자인 경우가 이미 10건 이상 파악되고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기준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에 외국인 동일인 지정과 관련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다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논의를 중단한 바 있다. 공정위는 산업부 등의 우려를 고려해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등 관련 규범에 상충하거나 위배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업무보고 곳곳에서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를 언급하고 집중 감시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자율규제’ 기조는 유지했다. 모빌리티·오픈마켓 등 핵심 플랫폼 분야에서 자사상품 우대를 통한 부당한 지배력을 휘두르거나 경쟁 플랫폼의 사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구체적인 규제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플랫폼과 입주업체 간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 등의 문제도 ‘플랫폼 독과점’이 아닌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공정한 거래기반 강화’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공정위는 “오픈마켓·배달앱 분야에서 현행법으로 규율하기 어려운 계약 관행 개선 등을 위해 자율규제를 적극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숙박앱·앱마켓 등 주요 업종으로 자율규제 논의를 순차적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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