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일본 도쿄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정상회담 이후 재계 일각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역할론’이 흘러나온다. 재계에서의 위상 회복 가능성과 함께 4대 그룹 복귀설도 거론된다. 4대 그룹은 재가입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정치적 이슈에 휘둘릴 수 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관련 일정에 전경련이 참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전경련이 네트워크를 가진 미국 기업·의회 단체와의 행사를 대통령실에 제안할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배경에는, 지난 16~17일 윤 대통령 방일 때 전경련이 일본 경제단체와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구성하고, 4대 그룹 총수를 포함해 두 나라 기업인들이 “경제협력”을 선언하는 자리를 만든 ‘성과’가 있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강제동원 정부안에 대한 여론이 나쁜 상황에서 어찌됐건 전경련이 궂은 일을 맡아 그나마 대통령의 모양새를 만들어준 게 아니냐.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관계 회복이 여의치 않았는데, 의도치 않게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전경련이 4월 한-미 정상회담 때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위상 회복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엄밀히 말해, 미래 기금 조성안과 기업인 회담은 전경련이 주도한 게 아니다. 강제동원 정부안 발표에 이어 대통령 방일 일정이 촉박하게 결정되면서, 정부가 부랴부랴 전경련을 활용해 일본과 ‘성의있는 조처’ 등을 논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은 정부 창구 노릇을 충실히 수행한 것뿐이다. 전경련은 지난 6일 강제징용 정부안 발표 이후 “기금과 관련해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가, 불과 몇시간 뒤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전경련과 게이단련(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은 1983년부터 매년 ‘한-일 재계회의’를 여는 등 상호 네트워크가 있다.
4대 그룹은 전경련 재가입에 대해 “논의 중이 아니며, 논의할 사안도 아니라고 본다”며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한 4대 그룹 관계자는 “전경련 주최 행사는 이전에도 필요에 따라 참여해왔다. 정책적 또는 정무적 판단으로 전경련 사업과 보조를 맞추는 것과, 다시 회원사로 가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또다른 4대 그룹 관계자도 “전경련이 회장 직무대행을 영입하면서까지 혁신과 쇄신을 약속했는데, 과거의 세를 되찾겠다는 이야기부터 나오면 앞뒤가 바뀐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적 이슈라는 명분으로 또다시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대기업의 대관담당 임원은 “전경련이 자발적 기부인 한일 미래기금 모금을 위해 기업들에 손을 내밀면 금세 논란이 될 수 있다. 과거 권력유착으로 여러차례 탈을 당한 걸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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