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경색돼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서울 중구 남산에서 아파트가 늘어선 서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말은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말이다.”
월스트리트의 영원한 스승이자 지금도 투자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존 템플턴 경이 남긴 명언이다. 최근 금융시장을 보면서 이 뼈 있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사실 돌이켜 보면 높은 물가와 가파른 금리 인상 다음에 금융시장에 문제가 없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고, 경기 침체를 피한 적도 거의 없었다. 1960년, 1970년, 1974년, 1981년, 1990년, 2001년, 2008년 등은 모두 높은 인플레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른 직후였는데 그 결과 금융 불안과 경기 침체라는 값비싼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높은 물가와 고강도 긴축에도 불구하고 금융 위험과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을까. 역사는 반복되지만 항상 조금 다르게 반복된다. 당시 경제 상황이나 자산 시장 거품 정도에 따라 금융 위험이나 경기 침체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번에도 고물가·고금리가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를 어렵게 만들 순 있겠지만, 지금은 다행히 자산 시장 거품이 제한적이고 경제의 중심을 이루는 기업들의 상태도 비교적 건강하다는 점에서 역대급 위기보다는 ‘소음의 지속’으로 보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위험을 측정하고 판단해야 할까. 일단 가까운 채권시장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채권시장은 현재와 미래의 통화정책과 경기를 반영하는 집단지성의 결정체다. 최근 채권시장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 은행권 불안을 반영해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채권 금리는 고점 대비 조금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10년부터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직전인 2020년 2월까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 평균값은 2.35%였다. 경기가 비교적 좋았던 시절이었음에도 금리가 이 정도였다면, 최근 연 4%에 육박한 미국 국채 2년물 금리와 연 3%대 중반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이들 금리가 각각 5%와 4%에 달했다.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장금리가 경기 침체를 반영해 좀 더 내려와 줘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줄고 은행 문제도 잦아들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 채권시장은 경제의 취약성과 금융 위험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데 만약 장기금리가 너무 빨리 떨어지면 이는 경기 침체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증시에 부담이고, 반대로 잘 안 떨어지면 그건 은행 시스템과 신용경색에 부담이므로 역시 증시에 악재다. 증시가 일종의 금리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는 당분간 잘해야 위 아래가 막힌 박스권일 가능성이 크다. 이래저래 금리가 좀 더 안정되고 경기둔화를 어느 정도 반영하기 전까지는 잠복해 있는 금리 인상의 후유증들이 세계 경제의 약한 고리를 계속 흔들고,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3프로TV>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