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호안투자컨설팅 대표가 2023년 5월1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 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누군가 당신을 찾아와 당신 계좌에 10억원을 넣어주는 대신, 계좌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를 달라고 하면 주겠는가. 그 계좌로 추가로 10억원을 대출받아 투자하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겠는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만 해주면 ‘두
배로 불려드릴게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까. 이 말 한마디에 수천 명이 수천억원을 작전세력에 넘겼다. 자기 돈, 자기 계좌만 넘긴 것이 아니라 주변 친구, 친척까지 소개해 그들에게 계좌를 줬다.
2023년 4월24일 주식시장에서는 특별한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8개 종목이 돌연 하한가를 기록했다. 해당 주식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난 1년여간 주가가 수백% 올랐다는 점과 외국계 계좌에서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에서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SG 사태’라고도 부른다. 이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자.
SG 사태의 주범은 라덕연 호안투자컨설팅 대표다. 라덕연 대표는 수년 전부터 ‘돈으로 돈을 버는 자산주’라는 세미나를 열어 투자자를 모집했다. 방식은 단순하다. 저평가된 자산주를 여러 명이 사서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떤 주식이든 많은 사람이 사기만 하고 팔지 않으면 주가는 올라간다.
이들이 선정한 종목이 자산주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자산주에 장기투자를 한다고 하면 뭔가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주식시장에는 보유자산에 비해 시가총액이 낮은 주식이 존재한다. 1천억원짜리 빌딩을 보유한 기업의 시가총액이 300억원에 불과한 경우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300억원을 주고 주식을 다 사서 빌딩을 팔아버리면 700억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저평가된 자산주가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선정한 지주사, 가스회사의 경우 보유자산에 비해 시장가격이 낮은 대표적인 자산주들이다. 이들 자산주는 직접 사업하지 않거나 성장성이 약하기 때문에 보유자산에 비해 주가가 싸다. 안전한 자산주에 장기투자를 다 같이 하자는 라 대표의 주장은 그럴싸해 보인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수십억, 수백억이 든 자기 계좌를 넘겼을까.
취재 중에 만난 참여자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큰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라 대표가 추천해주는 종목에 1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짧은 기간에 20~30% 수익이 나니 욕심이 생겼다. 10억, 20억을 맡겼으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을 텐데…. 탐욕이 눈과 귀를 막는다. 라 대표 쪽은 아예 신규 계좌를 열어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를 주면 직접 투자해주겠다고 했다. 20억원이 든 계좌를 넘겨줬다. 수익이 나면 반반씩 나누기로 했다. 돈을 맡겼을 뿐 그 돈으로 어떻게 투자하는지 몰랐다. 불안하긴 했지만 매일 불어나는 자산을 보면 기쁨이 더 컸다.
라 대표 쪽은 수천 명의 계좌로 시세를 조종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사서 올렸고, 오르면 일부 팔아 가격을 관리했다. 팔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보유한 다른 계좌로 사서 주가 하락을 방어했다. 불법 일임, 시세조종을 목적으로 통정매매를 했다. 수익이 늘어날수록 돈을 맡기는 사람도 늘었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사서 주가를 더 올렸다. 투자금에 대출까지 받았으니 주식을 살 돈은 얼마든지 있었다.
한국거래소의 시장감시 시스템은 특정 계좌가 시세에 관여하는 것을 적발한다. 라 대표 쪽은 특정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계좌를 불법으로 일임받아 거래했기에 시장감시 시스템에 적발되지 않았다. 에스비에스(SBS)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라 대표는 “누가 컨트롤타워인지 증명해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내가 실질적으로 고객들한테 주식을 사게 만들었지만 이걸 증명해낼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다”고 자신했다.
성과 보수를 받는 방식도 기상천외했다. 수천억원 단위의 돈이 거래되니 성과 보수도 현금으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수십억원의 현금이 오가면 은행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라 대표 쪽은 골프장, 리조트 회원권을 구입하게끔 해서 수익을 챙겼다. 또 골프, 필라테스 레슨비를 카드 결제하도록 했다. 실제 레슨이 동반되지 않은 카드깡이었다. 명품숍, 인테리어업체 등도 만들어 카드깡을 통해 성과 보수를 받는 용도로 활용했다. 그 돈으로 슈퍼카와 명품을 사고 성대한 파티를 열어 투자자들을 초대했다. 자신들의 돈으로 올린 주가, 실현되지 않은 수익으로 벌인 광란의 파티였다.
작전이 막을 내리는 장면도 극적이다. 4월20일 다우데이타의 최대주주인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605억원 규모의 주식 140만 주를 블록
딜(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했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해당 지분을 사간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딜 거래 다음날인 21일 다우데이타의 주가는 -9%까지 하락했다가 –6%로 마감됐다. 다음 영업일인 24일 장 초반부터 주가가 하락하더니 20여 분 만에 하한가로 떨어졌다. 주가 하락이 SG증권발 반대매매를 촉발한 것이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혹받는 전직 프로골퍼 안아무개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의 골프아카데미에 2023년 5월10일 출입금지 통제선이 설치돼 있다. 검찰은 이 연습장이 투자자들에게서 수수료를 회수하는 창구로 쓰인 것으로 본다. 연합뉴스
라 대표 쪽은 투자자들의 돈뿐 아니라 차액결제거래(CFD), 신용융자 등을 통해 대규모 대출을 받아 주식을 샀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경우 주가가 담보비율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강제로 주식을 팔아버린다. 무더기 반대매매가 나오면 주가는 또다시 하락한다. 다우데이타의 주가 하락은 전체 계좌의 담보비율을 하락시켰고 이들이 보유하던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세방, 선광, 하림지주, 다올투자증권 등 모든 종목의 반대매매를 촉발했다.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벌어졌다. 라 대표 쪽에 계좌를 맡긴 사람들은 자기 돈만 날린 것이 아니라 수억, 수십억원의 빚까지 떠안게 됐다.
라 대표 쪽은 이익을 본 사람이 범인이라며 김익래 회장을 폭락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김익래 회장이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외국계 헤지펀드를 통해 주식을 팔았다’ ‘실제로 주식을 판 게 아니어서 돈도 안 받았을 것이다’ ‘공매도 세력과 결탁해 주가를 떨어뜨려 수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주가가 폭락하기 이틀 전 600억원 규모의 주식을 팔았으니 타이밍이 묘하긴 하다. 김익래 회장 쪽은 “우연”이라고 반박했다. 주식 매각을 추진한 때는 4월 초였고 실제 주식 매매가 이뤄진 날짜는 매수 주관사(모건스탠리)가 정한 거지, 주가 폭락을 예견하고 정한 날짜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매도 세력과의 결탁설도 설명력이 떨어진다. 다우데이타의 공매도 잔고는 30만 주 내외였다. 주가가 폭락한 뒤 잔고는 10만 주 내외로 줄었다. 약 20만 주의 공매도 주식에서 수익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당 3만원씩 이익이 났다고 하면 약 60억원의 이익이 났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블록딜로 매수한 주식이 600억원이고 주가가 하락해 약 400억원 손실이 났다. 공매도로 60억원의 수익을 보겠다고 400억원을 날릴 세력은 없다. 라덕연 대표는 왜 김익래 회장을 상대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일까. 라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감옥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수익을 낸 김익래 회장의 불법성을 밝혀 손해배상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익래 회장이 작전세력과 연계됐는지,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얻으려 했는지는 수사로 밝힐 문제다. 김 회장은 5월4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다우키움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또 주식 매도 대금은 사회에 공헌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매도 과정에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로 모든 분께 상실감을 드린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검찰은 합동수사팀을 구성해 해당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주식투자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전문가가 내 자산을 대신 운용해 높은 수익을 내주길 바란다. 라덕연 대표 쪽에 돈을 맡긴 사람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돈을 모아 일괄적으로 운용하는 ‘펀드’라는 정상적인 상품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불법적인 방식에 거액을 맡겼다. 고수익에 대한 탐욕도 있겠지만 금융권에 대한 신뢰 부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펀드에 가입하던 때도 있었다. 요즘은 펀드에서 돈을 빼서 직접 투자에 나서는 움직임이 거세다. 낮은 수익률과 불완전판매로 기관투자자들이 신뢰를 잃은 탓이 크다. 내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도록 금융권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제2의 라덕연, 제3의 라덕연을 찾아다닐 것이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