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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원조·개방 거쳐 ‘한미 경제동맹’으로…미-중 경쟁 속 새 시험대

등록 2023-06-12 05:00수정 2023-06-13 10:17

원조·개방압력·한미FTA까지 ‘70년 드라마’
한미FTA 재협상 개시를 앞두고 2017년 8월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공동위 특별회기 장면. 산업부 제공
한미FTA 재협상 개시를 앞두고 2017년 8월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공동위 특별회기 장면. 산업부 제공

한국전쟁 이후 지난 70년간 한-미 양국의 교역 규모와 자본 투자 규모는 각각 수백, 수천 배 불어났다. 적어도 경제 영역에선 두 나라 관계는 빠른 속도로 긴밀해지고 심화해왔다는 얘기다. 이런 큰 틀 속에서도 현미경을 들이대 속살을 살펴보면 협력과 갈등이 오가는 등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처럼 20세기에 보기 드문 속도의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미국의 대외 정책 수정,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두 나라 간 밀당(밀고당기기)이 전개됐다. 미-중 전략 경쟁과 공급망 분열 시대를 맞아, 양국 경제협력 체제는 또 한 번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무상원조에서 유상차관 시대로…한국 경제정책 전환

전쟁 참화로 이렇다 할만한 자본이 축적되지 않은 한국은, 미국의 원조 자금을 비상의 종잣돈으로 삼았다. 미국의 지원으로 전후 경제 복구와 부흥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를 ‘무상 증여 원조 경제’ 시기, 1960년대를 ‘장기 저리 유상 차관 경제’ 시기라고 학계에서 부르는 까닭이다.

11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자료를 보면, 전후 20년(1953~1972년) 미국으로부터 받은 무상 원조액은 모두 32억2600만달러다. 집계 기간을 1946년부터 1978년까지 확대하고 유상 차관까지 포함하면 원조액은 60억달러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전체 아프리카 국가들이 받은 미 원조액(69억달러)이나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전체 남미 국가들이 받는 원조액(149억달러)을 고려하면 미국의 한국 원조 규모는 작지 않은 수준이다.

1950년대 후반 즈음에는 미 원조액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웃돌았다. 연간 총 세수입보다도 미 원조액이 더 많았던 때도 여러 해다. 열악한 저축률 등에 따른 취약한 토종 자본과 작디 작은 재정 수입을 미 경제 원조가 상당 부분 메꾸는 구조였던 셈이다.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200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1960년대 경제도약 기반 마련에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막대한 원조의 역할이 매우 컸다”며 “당시 미국 원조당국은 원조 프로그램을 한국의 거시·산업정책 방향과 연결시키면서 국내 경제정책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제 원조 방식 수정은 한국 경제에 변화를 불러왔다. 미국은 1950년대 후반부터 경제 원조와 군사 원조를 구분하고 민간 자본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무상 원조 대신 저금리의 유상 차관 형태로 금전적 지원 방식을 바꿨다.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 누적 등 자국의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한 조처였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무상원조는 1957년(3억6800만달러)에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해 1965년 1억3100만달러, 1973년에는 200만달러로 줄었다. 조 위원은 “미국의 원조정책 전환은 우리가 이전의 수입대체 위주에서 1958년부터 수출지향적 공업화정책으로 선회하는 동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공업화·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은 경제규모를 빠르게 확대시켰고 1970년대 들어 양국 경제는 연간 교역량이 70억달러(1978년 기준)에 이르는 등 일방적인 수혜국-공여국 관계를 넘어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됐다.

1986년 무역흑자와 무역마찰, 개방 압력

1980년대 중반 한국 경제는 3저 현상(저유가·저달러·저금리) 등 우호적인 국제경제 환경 속에 성장을 지속했다. 1986년에는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31억3천만달러)를 달성한다. 당시 우리 제품의 미국시장 수출액은 138억8천만달러, 대미 무역 흑자액은 73억3천만달러였다. 무역 흑자 달성은 미국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셈이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법’ 제정이 1986년 12월에 이뤄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대미 수출이 늘고 무역 흑자가 불어나면서 한-미 관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미 행정부는 1992년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고 미국 상품·서비스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없애도록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에 시장 개방을 공격적으로 요구하겠다는 뜻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2월 미 <뉴욕타임스>의 글로벌 경제위기 진단 기획 시리즈(글로벌 전염·Global Contagion)에는 1990년대 초반 상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미국은 세계 금융시장 자유화 추진 과정에서 한국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오이시디 가입을 전제로(혹은 빌미로) 한국에 시장개방을 요구했다.”

실제 한국은 1996년 오이시디에 가입하면서 한-미 경제관계는 △외환시장을 비롯한 금융·자본시장 개방과 자유화 △외국인투자 제한 완화 △각종 정부 규제의 철폐·완화라는 ‘시장화’로 급속 이동한다. 이러한 변화는 1997년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가속화시켰음은 두말할 이유도 없다. 아이엠에프의 대주주인 미국의 주도 아래 21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 한편 시장개방과 시장화는 한층 급물살을 타게 됐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미FTA…동맹 성격의 전환, 그리고 뒤바뀌는 판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는 한-미 경제 관계 양상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체결된 이 무역협정을 계기로 느슨해져 가던 양국의 무역 구조는 한층 두터워졌다. 구체적으로 산업화 도약 시기에 한국 총수출에서 대미 수출 비중은 1990년(29.8%)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어 2010년대 초에는 10%조차 위협받고 있던 터였다. 한국의 수출 다변화에다 중국의 세계 시장 편입 등이 낳은 결과였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에는 다시 한-미 양국의 교역 규모는 불어나기 시작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양국 관계를 정치·군사 중심에서 실질적인 경제 동반자 중심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고, 양국 협업모델로 성장하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2017년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 관계는 또다른 파고를 만난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놓고 서로 갈등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공급망 균열과 미국 주도의 보호무역주의 파고 속에서 한국 경제는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경제안보 시대에 휩쓸려 들어가며 도전과 시련을 맞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기술 중심으로 ‘한-중 경제관계’라는 민감한 문제가 얽혀들면서, 한-미 양국 경제관계도 ‘자유시장 가치동맹’을 넘어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내재하는 복잡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는 제3국을 통한 미국시장 우회 수출 규모도 적지 않고, 우리 첨단산업 핵심기술과 설비의 상당 부분이 미국을 원천으로 한다”며 “다만 세계경제 블록화를 초래할 수 있는 교역의 지나친 정치화를 막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교역 환경을 위협하는 조치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천명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협력하고 미국도 설득하는 일관된 대외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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