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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CEO와 게임 히어로는 남성? 윤송이는 AI 너머 세상 편견과 싸운다

등록 2023-06-17 05:00수정 2023-06-17 11:58

[인터뷰]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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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이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매거진 라이브러리에서 카메라 앞에서 웃는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윤송이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매거진 라이브러리에서 카메라 앞에서 웃는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 여자는 혼자뿐이었다. 1985년에 열린 ‘과학상자’ 조립대회, 초등학교 4학년 윤송이는 그러려니 했다. 여대와 합동 엠티(MT)를 가던 카이스트 시절을 지나 24살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입사한 ‘매킨지&컴퍼니’에서는 컨설팅을 진행하러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고객사의 남성 임원만 300명이 앉아 있기도 했다. 그로부터 20년, ‘인공지능 천재 소녀’에서 기업인이 된 윤송이(47)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어디에 서 있을까?

“인공지능 열풍을 일으킨 챗지피티(ChatGPT)의 답변에는 암묵적 편견이 가득합니다. 이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킨 데이터 세트 자체가 인간의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윤송이 사장은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챗지피티 시대, 인간과 에이아이(AI) 공존의 조건’을 주제로 한 이 행사에서 윤송이 사장은 발제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한겨레>는 그를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10대 때부터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에 푹 빠져 연구를 시작한 그에게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과 인간 윤송이 삶의 맥락이 떨어져 있지 않을 터였다. 24살 엠아이티 박사, 28살 에스케이텔레콤(SKT) 최연소 임원으로 따갑도록 ‘유명세’를 치렀던 그는 2008년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와의 결혼 이후 ‘윤송이’를 주제로 한 언론 인터뷰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그에게 윤송이의 길과 인공지능의 길을 함께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엔씨소프트 알앤디(R&D)센터에서 진행했다. 그가 직접 지휘해 2013년 만든 200명 정원의 어린이집 ‘웃는땅콩’이 1층에 있는 건물이다. 남성 연구원이 많은 게임회사 연구개발 건물인데도 ‘웃는땅콩’ 덕에 들어서자마자 등원하는 아이들의 재잘재잘 까르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는 11층 회의실에서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윤송이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미디어아트갤러리에 전시된 &lt;그래픽 프로시저&gt;(심규하 작) 앞에서 웃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윤송이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미디어아트갤러리에 전시된 <그래픽 프로시저>(심규하 작) 앞에서 웃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편향된 데이터, 다양성 논의 30년 전으로 돌릴 수 있어”

―‘천재 소녀, 최연소 임원 시절’이었던 2004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주목할 만한 세계 여성 기업인 50’에 선정됐고 이후 여러곳에서 ‘미래를 열어갈 인물’에 선정됐다. 그 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이전처럼 활동을 못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소식이 궁금했다.

“천재도 아니고, 소녀는 더더욱 아니다.(웃음) 사는 건 별로 다르지 않다. 엔씨소프트의 최고전략책임자, 북미 법인 엔씨웨스트의 대표, 엔씨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경영 일을 가장 열심히 하고 있다. 모교인 엠아이티 이사회에 8년째 몸담고 있고 스탠퍼드대학의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 자문위원,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이사 등도 맡고 있다.”

―최고전략책임자라는 직함이 낯선데 어떤 일을 하나?

“엔씨소프트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게임회사가 왜 블록체인을 안 하냐고 물었지만 많은 연구 끝에 시기상조라고 결론 내렸다. 인공지능 조직은 빨리 꾸렸다. 책임 있는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 상황과 기술 동향을 모두 잘 아는 게 중요하다.”

―미국 법인인 엔씨웨스트 대표를 맡아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로서 미국에서 챗지피티의 탄생을 지켜본 소감은 어땠나?

“매우 흥미로웠다. 오픈에이아이(OpenAI)나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난해 11월에 챗지피티를 내면서 이렇게까지 히트 칠 줄은 몰랐던 듯하다. 데이터 수집을 통해 더 발전시키려 오픈했는데 너무 많이 사용하니까 이게 하나의 제품(프로덕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이번 포럼의 연설 내용이 인공지능의 편향성에 대한 경고다. 좀 더 설명해달라.

“10년 전만 해도 구글에 들어가 ‘시이오’(CEO·최고경영자)라는 단어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백인 남성만 쫙 나왔다. 처음 나오는 여성이 바비 인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남성, 그것도 백인 남성이 회사 대표인 경우가 많아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갖고 훈련을 시킨다. 이런 데이터를 그대로 학습하면 인공지능은 회사 대표가 어떻게 생겼다고 인식할까? 그 인공지능이 생성해낸 결과물은 다시 인간에게 어떤 인상과 영향을 줄까? 인공지능이 어떤 사람에게 회사 대표가 될 기회를 줄지 너무 뻔하다.”

―편견의 학습이 더 큰 편견을 양산한다는 것인가?

“수년 전 이미 미국 기업 아마존에서 기존의 인사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채용 분야에 사용해보려다가 이 같은 편향성의 문제를 확인한 적도 있다. 아마존에서 평가 좋고 승진 잘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학습시킨 결과 그동안 승진에서 유리했던 남성을 유리하게, 여성을 불리하게 만든 것이다. 유리천장이 더 강화된 결과였고, 너무 편향적이어서 아마존은 해당 기술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인공지능에 의해 편향이 생성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많은 이들이 수십년 이상 싸워서 얻어낸 가치가 순식간에 뒤집어져버릴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계속 남성에게만 기회를 주는 결과를 생성하면 결국 ‘역시 남자들이 잘하나 봐’라는 식으로 편견이 강화되고 여성의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우리의 사회 다양성이나 기회의 균등에 대한 논의를 30년 전으로 되돌려버리는 위험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복리 이자의 원리와 비슷하다. 당장은 작은 차이인 것 같아도 이런 편향적 우위가 쌓이면 극복할 수 없는 큰 차이가 만들어진다.”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토론에 참여한 윤 사장의 발언을 청중들이 듣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토론에 참여한 윤 사장의 발언을 청중들이 듣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막을 방법이 있을까?

“인간의 편견이 아닌, 인간이 지향하는 바를 학습시키면 된다. 자율주행의 경우 예전에는 도로 데이터를 익히기 위해 직접 도로 위를 달려야 했는데 이제는 시뮬레이션 세계를 만들어 인공적으로 생성한 3차원(3D) 정보를 학습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데이터에 편견이 있다면 그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의 모습을 그려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를 만들어 학습을 보강시키는 방법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책임감 있게 고민해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지향점이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기계가 내놓은 결과값에 편향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널리 알리고 이해시켜야 한다.”

―모두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겠다.

“얼마 전 한 교수님이 ‘그럼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낫길 바라는 거냐’고 질문해 놀란 적이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하냐는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편견을 학습하면 더 위험하다는 의미다.”

윤 사장은 지난해 11월 스탠퍼드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의 석학들을 인터뷰해 <가장 인간적인 미래>를 펴냈다. 서문에서 그는 자신이 직원들에게 “(게임 속) 히어로(영웅) 캐릭터의 성별 비율을 같게 하는 것이 어떨까”에 대해 묻자 “왜 그래야 하죠?”라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온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제대로 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과거의 오류를 답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만들어가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이었다.

드라마 ‘카이스트’ 이나영의 실제 모델 ’천재 소녀’

―인공지능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우연이었다. 카이스트는 2학년 때 학과를 정하는데 1학년 때 지도교수님이 우리나라 인공지능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김진형 교수님이었다. 당시 교수님이 컴퓨터가 인간이 쓴 문자를 인식하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인공지능 초기 모델이었다. 옆에서 보다가 그 길로 가게 됐다. 1990년대 당시는 ‘인공지능의 겨울’(AI Winter)을 지나며 다들 인공지능은 안 된다고 말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다들 인공지능의 범주에 있는 연구를 하면서도 인공지능이 아니라고, 알고리즘이나 로보틱스나 컴퓨터 비전이라고 했다. 3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로봇 축구 대회를 준비하고, 상 받고 하면서 연구에 푹 빠져 지냈다.”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온 배우 이나영 역할의 실제 모델이던 시절이겠다.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나영 배우가 연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뭔가 떠올라 식판을 떨어뜨리고 갔다는 에피소드를 듣고 아, 내 얘기구나 했다. 얼마 전에야 송지나 작가님을 만났는데 대본을 쓰던 당시 카이스트에서 만난 학생들이 계속 한명에 대한 얘기를 하더란다. 실제 인물로 캐릭터를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이상한 얘기가 계속 나오니까 그냥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하더라.”

―대학 시절 어떻게 지냈기에?

“연구에 빠져 지냈다. 실험을 해서 유닉스 컴퓨터가 훈련되도록 돌려놓으면 시간이 많이 걸려 새벽 3시쯤에나 끝났다. 실행 결과를 보고 싶어서 아침까지 참지 못하고 새벽 3시면 기숙사를 나와 연구실로 갔다. 눈이 벌게져서 새벽 5시쯤 나오면 술 먹고 기숙사 올라가는 인파와 섞이곤 했다.”

―술 마시고 놀지는 않았나?

“대학 시절에 내가 만 20살이 안 됐다. 술 마시긴 좀 그랬다. 그렇게 막 놀러 다닌 적이 없다.”

―‘이상하다’는 소리 많이 들었나?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상하다’, ‘다르다’는 말이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비커, 플라스크, 삼각대를 사러 다녔다. 엄마와 함께 공업소 같은 곳에 가서 염산을 샀던 기억도 난다. 실험도구들을 방 책꽂이에 올려두고 실험을 했다. 내가 하도 과학실을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현미경을 빌려주기도 했다. 하루는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나기에 그 현미경으로 관찰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과학에만 관심이 있었나?

“독서와 글짓기를 좋아해 아침마다 신문 사설을 따라 썼고 어린이 신문에 글이 당선된 적도 있다. 동네 어귀에 외판원이 오면 엄마를 졸라서 세계 명작 전집을 사고는 하룻밤에 다 읽어 다음날엔 백과사전으로 바꾸기도 했다. 영어 시디(CD)가 붙어 있는 책을 듣고 또 들었다. 그림 그리는 것도 너무 좋아해 예술학교 진학을 꿈꾼 적도 있다.”

2011년 태어난 둘째 아들 모습을 직접 그린 유화 작품. 윤송이 제공
2011년 태어난 둘째 아들 모습을 직접 그린 유화 작품. 윤송이 제공

2011년 사망한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며 직접 그린 유화 작품. 윤송이 제공
2011년 사망한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며 직접 그린 유화 작품. 윤송이 제공

―그중 왜 과학을 선택했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과학관에서 하는 과학전람회에 나가 내가 한 실험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대상을 받았다. 발표를 들은 한 어른이 ‘너 과학을 좋아하는구나. 지금은 과학고가 남자만 뽑지만 네가 들어갈 때쯤에는 여자도 뽑을 거야. 그때 와라’라고 말했다.(2년 뒤인 1988년부터 경기과학고가 여학생도 뽑기 시작했고 같은 해 서울과학고가 개교했다.) 서울과학고 3기로 입학해 조기졸업한 뒤 카이스트에 진학했다.”

―카이스트도 조기졸업하고 또 곧바로 미국 유학을 갔다.

“공부를 하다 사람에게 좋은 기술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길로 중앙도서관에 가 미국 대학에 대한 책을 읽으며 어떤 전공을 해야 사람에 대해 배울 수 있는지 찾았다. 엠아이티 컴퓨터 신경과학 뇌·인지과학과를 알게 됐고 우편으로 70달러 수표를 보내 지원서를 받았다.”

―24살에 엠아이티 박사학위를 땄다.

“당시 연구실에서 나는 인공지능의 지능 담당이었다. 영화감독을 하던 친구, 훗날 그래픽 분야에서 대단한 성취를 한 친구 등과 함께 모여 연구를 했다. 재밌던 시절이다.”

ENTJ 일하는 엄마 “여성들 가사 전담 심각”

―공학도로 살아오면서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 대한 경험이 많았겠다.

“초등학교 때야 1980년대니까 과학상자 조립대회를 하러 방에 들어가면 나만 여자, 수학경시대회를 나가도 나만 여자였다. 여자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카이스트 전자과도 220명 중 여성은 7명뿐이었다. ‘엠티를 여대와 함께 갈 거니 너는 설거지나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엔씨소프트 어린이집을 기획한 이야기를 담은 책 <웃는땅콩 이야기>에서 윤송이 사장은 이렇게 적었다. “치열한 회사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의 최선을 요구하는데, 여기에 아이들까지 돌보다 보면 두세명분의 일정을 계획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워킹맘들은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백미터 달리기에서 혼자만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서 있는 듯한 무게를 종종 느낍니다.” 그가 아이를 낳은 뒤에 해야 했던 달리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2009년, 2011년에 아이를 낳으며 진로가 고민이 됐을 것 같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감정이 있는 인공합성된 캐릭터’ 연구였고 사실 이 분야는 게임산업과 가장 잘 맞는 주제다. 카이스트 시절 심취했던 로봇 축구의 경우 하드웨어인 로봇에 문제가 발생하면 난감했다. 하드웨어 대신 3차원(3D) 영상에 지능을 붙이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에스케이텔레콤 임원을 하던 2004년에 엔씨소프트의 사외이사가 돼서 보니 바로 이 회사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게임·아트·비즈니스를 모두 하는 회사더라. 이 때문에 결혼 뒤 자연스럽게 엔씨소프트에 합류했다.”

―그러고 보니 인공지능과 게임은 딱 맞는 분야다.

“게임은 혁신의 선봉장에 서 있다. 게임의 세계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얼리어답터들이 있고, 자율주행과 달리 실제 리스크(위험)도 적어 인공지능 실험은 게임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다. 앞으로 많은 것을 선보일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2011년 인공지능 연구조직을 꾸려 현재 전문 연구개발 인력만 300여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얼마 전에는 김택진 창업주를 ‘에이아이 휴먼’으로 만들어 윤 사장이 직접 공개하기도 했다. ‘엔씨 인공지능 윤리 프레임워크’라는 이름으로 인공지능 윤리 정립에도 앞장서고 있다.

―미국에 직접 가서 미국 법인을 챙긴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나?

“처음부터 미국에 가려고 간 건 아니었다. 당시에 미국 시애틀에 있던 중요한 스튜디오에 계속 문제가 발생했다. 본사에서 파견된 임원과 현지 임원의 문화적 차이가 문제였다. 핵심 인력이 그만둘 상황이어서 수습하러 미국으로 달려갔다. 2012년 첫째가 네살, 둘째가 두살이었다. (미국에) 급하게 가느라 어린이집도 구하기 어려워 회사에서 좀 먼 곳에 보내게 됐는데 그곳은 라이선스가 없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똥을 싸면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했다. 회의를 하다가 달려가 똥기저귀를 가는 생활을 했다.”

―일을 왕성하게 하면서 엄마 역할까지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우리나라 젠더 평등 지수를 보면 무임금 가사노동의 분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우리나라 남성의 무임금 가사노동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95%의 가사노동을 여성들은 임금노동까지 하면서 수행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들의 지위가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두세배를 해내야 그냥 남성들과 비슷하구나 생각이 드는 수준이 된다. 심각한 문제다.”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이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회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이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회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구글 캘린더 살림 일정 빼곡…식세기 사랑해”

―아이들은 어떻게 키웠나?

“아이들이 꽤 독립적이다. 인공지능을 위해 사람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아이들의 뇌 발달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특정한 시기에 자극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되도록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 주변에 있는 것을 놀잇감 삼게 했다. 어느 날 둘째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가 만든 게임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가 독학을 해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픽이 상당한 수준이다.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첫째는 환경운동에 관심이 있어 환경과 관련한 그림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시간을 엄청 체계적으로 쓴다고 들었다.

“내 구글 캘린더에는 ‘살림 달력’이 따로 있다. 두 아들 일정부터 정원 관리, 해충 방역, 태양광패널 청소, 이불 빨래, 식기세척기 소독 일정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나는 식기세척기나 오븐, 세탁기처럼 내 시간을 절약해주는 가전제품을 사랑한다.”

―심상치 않다. 엠비티아이(MBTI)가 뭔가?

“이엔티제이(ENTJ)다. 그중 ‘엔’(직관형, 미래지향적, 가능성 추구, 신속한 일처리)이 강하더라.

―앞으로 계획은?

“재미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데 여전히 세상에 재밌는 일이 많다. 부지런히 살겠다.”

그는 자신의 책 <가장 인간적인 미래>에서 “불안과 혼돈의 시기일수록 진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오히려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미래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나약한 운명을 끌어안은 채 다음은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함께 더듬어 묻고 또 물으며” 걸어왔고 그것이 “가장 인간적이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 방식으로 앞으로도 그는 ‘윤송이적인 미래’를 향해 부지런히 발을 내디딜 듯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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