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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철근 누락 정말 몰랐나…LH 퇴직자 전관특혜·원가절감 관행 지목

등록 2023-08-01 18:40수정 2023-08-02 09:50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4월 발생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 특혜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근절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4월 발생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 특혜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근절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공공아파트 15곳의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에서 ‘전단보강근(보강 철근) 누락’이 확인된 가운데, 이런 후진국형 사고가 빚어진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된 엘에이치 아파트의 경우 설계·감리·시공 등 전 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무량판 구조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 설계 및 책임시공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설계·감리 오류 원인은?

엘에이치 15개 단지 아파트 중 설계 오류가 확인된 곳은 10개 단지다. 양주 회천 등 7곳은 설계도면 작성 전 단계에서 보강근을 적용해야 하는 구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나머지 3곳은 설계도면 작성 단계에서 전단보강 상세도를 미흡하게 처리했다. 엘에이치는 “구조계산 자체를 시스템에 잘못 입력한 경우도 있고 소통 미흡으로 설계가 바뀌는 부분을 구조계산에서 누락하기도 했다”며 “상세도 도면에 보강근이 들어가는 기둥을 표시하는데 이를 누락한 단순 실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 4월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의 경우는 구조설계상 32개 모든 기둥에 전단보강근이 필요했는데도 설계도면에 기둥 15곳이 전단보강근 ‘미적용’으로 표기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설계 오류가 빚어지는 까닭은 설계업체의 기술력과 숙련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엘에이치는 무량판 지하주차장 보급을 위한 표준설계를 만들었지만 특정 아파트 단지의 상세 설계는 용역 설계사무소가 맡았다. 문제는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고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설계사무소들이 엘에이치 퇴직자들을 영입해 설계용역을 많이 따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는 것이다. ‘전관예우’ 의혹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엘에이치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 부실공사의 한 원인으로 ‘전관예우 관행’을 꼽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감리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천 검단아파트는 시공사가 작성한 철근작업 상세도(Shop Drawing)가 있었고 감리자는 이를 확인·승인하게 돼 있는데도 이 과정에서 도면의 전단보강근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건설사 출신의 한 감리원은 “감리는 기술자(감리원) 몇 명을 보유하고 있는 작은 회사들이 대부분인데, 현역에서 은퇴한 분들이 많이 종사하고 고도의 기술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이분들이 새 공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파트 현장에서는 감리원 한두명이 철근 배근 등 시공 작업을 일일이 확인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시공은 왜 부실했나?

15곳 중 시공 오류가 확인된 아파트는 5곳이었다. 이 가운데 2곳은 다른 층 도면으로 배근을 한 것으로, 3곳은 보강근 설치를 단순 누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 검단아파트는 보강근을 해야 하는 32곳 중에서 붕괴된 위치 등 확인이 불가한 기둥을 제외한 8곳 가운데 4곳에서 설계와 다르게 전단보강근을 누락했다.

건설업계에선 시공 과정에서의 전단보강근 누락은 원가 절감, 기술력 부족, 미숙한 작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진단이 나온다. 홍성용 대한건축사협회 홍보위원(건축사)은 “국내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는 원가를 이유로 숙련된 기술자를 쓰지 않고 있고 인테리어 목수 등 숙련공은 보수가 낮은 아파트 사업장으로는 넘어가지 않는다”며 “건축은 설계 오류가 생겨도 시공·감리에서 이를 바로잡는 안전장치가 있는데, 무량판 구조 분야에서는 안전을 책임질 기술자와 숙련공이 절대 부족한 점이 사고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재희 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실장은 “무량판 보강근 시공은 숙련된 작업과 충분한 공사기간이 필요한데, 엘에이치는 거꾸로 원가 절감과 공기 맞추기 속도전을 벌였다”며 “무량판 시공이 갖는 장점만 취하고 책임은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가 2017년 이후 준공된 전국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 293곳을 전수조사할 예정인 가운데, 이 중에 105개 단지는 공사가 진행 중이고 188개 단지는 이미 입주를 마쳤다. 특히 이들 중에는 지하주차장은 물론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사용한 곳이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서둘러 어떻게 점검할지 밝힐 계획”이라며 “이때 민간 무량판 아파트 현황을 종합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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