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예산(총지출) 증가율을 3% 이내로 억제한 데는 기존 예산의 삭감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 예산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의무 지출이 절반 차지하는 점을 염두에 두면 특정 분야에서 대규모 삭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정부는 ‘낭비적 지출 제거를 통한 재정 정상화’로 설명하면서도 정작 삭감된 구체적인 사업 내역과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29일 기획재정부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가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단행한 지출 구조조정 규모는 약 23조원이다. 지난해(24조원)에 이어 2년 연속 20조원 대 예산 구조조정이 이어진 셈이다. 예산 사업 효과나 집행 실적을 따져본 뒤 다음 년도 예산에 이를 반영하는 과정을 뜻하는 ‘지출 구조조정’은 매년 이뤄지는 예산 편성 과정 중 하나이나, 그 규모가 예년에 견줘 두 배 이상 크다는 게 특징이다. 문재인 정부 때 구조조정 예산 규모는 연간 10~12조원이었다.
예산 삭감은 ‘연구&개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해당 분야는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카르텔 예산’으로 지목한 바 있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따 예산안 발표 때 공개하는 ‘분야별 지출 내역’을 보면, 연구&개발 관련 예산은 모두 25조9천억원으로 올해 예산에 견줘 16.6%나 줄었다. 12개 분야 중 올해 예산보다 예산이 줄어든 분야는 연구&개발 분야를 포함해 모두 세 분야다. 이중 일반·지방행정(0.8%), 교육(6.9%) 분야는 세수에 일정 비율이 자동 책정되는 교부금(세) 비중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의도적 삭감이 연구&개발 분야에 집중됐다고 볼 수 있다.
연구&개발 예산도 종류에 따라 삭감 비중이 다르다. 교육 분야 연구&개발 예산이 올해 대비 58.2%(약 1조7천억원) 가장 큰 폭으로 줄었고,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연구&개발이 26.3%(약 3천억원),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16.8%(약 1조3천억원), 과학기술·통신 분야가 9.4%(약 9천억원)씩 삭감됐다.
이와 함께 크게 줄어든 예산은 보조금이다. 다만 올해와 내년 전체 보조금 예산 규모와 내역을 정부가 밝히지 않아 삭감 내역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022년 기준 전체 보조금 예산은 102조3천억원이었다. 기재부는 “학교 스포츠·예술강사 지원은 지방교육재정을 통해 수행하도록 했고, 정치적 강의에 강사비를 지급한 사업이나 대표 친족 간 내부 거래가 이뤄진 단체에 대한 보조금 등은 구조조정했다”고만 밝혔다. 이밖에도 기재부는 약 1만개 사업에서 크고작은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고 했다. 총 삭감 규모는 4조원 수준이라고 한다.
기재부가 지출 구조조정 구체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탓에 ‘낭비성 지출’, ‘카르텔 예산’으로 간주돼 삭감된 예산 사업의 상세 내역은 앞으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조각조각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지난 27일 예산안 상세 브리핑에서 “예산 삭감 사업 관계자들이 민감해 하기 때문에 지출 구조조정 사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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