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알라 카리스 에스토니아 대통령과의 한·에스토니아 정상회담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부가 올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며 파격적인 감세 조처를 시행 중이지만 약발이 통 먹히지 않고 있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로 인한 조달 비용 및 해외투자 증가 등으로 국내 설비투자가 외려 큰 폭으로 뒷걸음질하며 성장을 갉아먹고 있어서다. 정부가 ‘민간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감세를 내세웠지만 정작 기업들은 시큰둥한 셈이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보면, 지난 3분기(7∼9월) 국내 설비투자는 2분기(4∼6월)에 견줘 2.7% 줄었다. 반도체 제조장비 투자 등이 감소한 까닭이다. 설비투자는 앞선 지난해 1분기에 전기 대비 4.2% 뒷걸음질한 후 2분기 1.6%, 3분기 7.0%, 4분기 2.4%로 플러스(+) 흐름을 보이다가 올해 1분기 -5.0%, 2분기 0.5%를 찍고 3분기에도 부진을 지속했다.
기업의 투자 부진은 경기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분기와 3분기에 설비투자 부문은 전체 실질 성장률을 각각 0.5%포인트, 0.2%포인트 끌어내렸다. 투자 부진이 없었다면 올해 3분기 우리 경제 성장률이 기존 0.6%에서 0.8% 이상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회의 자료를 살피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는 정부가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 결과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등 국가 전략 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지시하자, 올 연초부터 기업 투자에 적용하는 세금 공제를 대폭 강화하는 감세안을 마련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월 ‘반도체 등 세제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반도체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의 전체 투자를 촉진해 올해 경기 둔화를 완화하고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 회복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었다.
이에 따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반도체·배터리(이차전지) 등에 투자하는 대·중견기업의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이 기존 8%에서 15%로 껑충 뛰었다. 또 올해 한시적으로 직전 3년간 평균 투자액 대비 증가한 투자분에 10% 추가 세액공제를 해주고, 2011년에 폐지된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도 올해 1년간 한시적으로 부활시켰다. 신성장·원천기술 분야는 물론 일반 시설투자까지 세액 공제폭을 함께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투자 진작을 위한 온갖 감세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이런 정책이 약발을 받지 않는 건 기업들의 호응이 신통치 않아서란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요가 주춤한데다 금리 상승으로 조달 비용이 늘어나 선제적 투자 등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주요국들이 막대한 보조금과 지원금을 앞세워 현지투자 유치 경쟁을 벌이는 것도 국내 투자에는 큰 악재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대기업들의) 미국 현지투자가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국내 투자가 줄어드는 구축 효과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미국과 유럽 등의 자국 투자 유치 법안이나 정책들의 시계를 고려할 때 2030년까지 이런 경향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일부 대기업들이 올해 시행 중인 한시적 투자세액공제를 내년까지 연장해달라고 하지만, 정부의 꾸준한 감세 메시지에도 실제 투자로 충분히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라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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