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으면 누가 돌봐줄 수 있을지….’
인공지능(AI)이 한평생 발달장애인 자녀의 돌봄을 책임지는 부모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까. 인공지능 개발에 힘쓰고 있는 에스케이텔레콤(SKT)이 행동분석 기술을 활용한 발달장애 돌봄 사업에 첫발을 뗐다.
지난 23일 한겨레는 서울 종로구 종로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서 시범 운영 중인 ‘인공지능 활용 발달장애인 도전행동 분석 시스템’ 현장을 찾았다. 이 시스템은 사람과 사물을 인식하는 인공지능인 비전 인공지능(Vision AI) 기술이 적용된 시시티브이(CCTV·폐회로텔레비전)를 활용해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자동으로 기록, 분석한다. 발달장애 행동중재 전문가들이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전적 행동을 완화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도전적 행동이란 발달장애인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협적인 상황을 만드는 행동을 뜻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삼는 게 아니라 기존 사회적 통제와 만족스럽지 않은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행동이라는 개념을 들여와 ‘문제행동’이나 ‘행동장애’ 대신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날 찾은 종로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는 비전 인공지능(Vision AI) 기술이 적용된 시시티브이가 모두 4대 설치돼 있었다. 인공지능이 센터를 이용하는 발달장애인들의 활동 영상 데이터에서 머리와 어깨 등 인체 골격을 인식해 데이터를 추출한다. 에스케이텔레콤은 발차기, 머리 때리기(자해)와 같은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 패턴을 인공지능이 인식하고 분석해 ‘글자’(텍스트)로 변환하고, 도전적 행동이 얼마나 오래갔는지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에스케이텔레콤(SKT) 인공지능(AI) 연구원들이 밀고 당기는 모습을 인공지능 행동분석 시시티브이(CCTV)가 인지한 화면. 에스케이텔레콤 제공
특히 이번 시범 사업에는 발달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인공지능 데이터 스타트업 ‘테스트웍스’가 협력사로 참여했다. 인공지능이 인식한 개별 발달장애인의 도전적인 행동이 쓰러짐, 자해 등 어떤 상황인지 분류하는 ‘데이터 라벨링’ 작업을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맡았다고 한다.
박우영 에스케이텔레콤 이에스지(ESG) 얼라이언스 매니저는 “지금까지 배우, 대역 등이 참여해 행동 분석 데이터를 쌓았지만, 이번 시범 사업은 직접 돌봄 현장에서 발달장애 당사자의 행동 영상을 분석할 수 있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시스템은 발차기·주먹질·밀고당기기·쓰러짐·머리 때리기(자해)·드러눕기·달리기·배회하기·점프 등 모두 9가지 도전적 행동을 인지해 낼 수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앞으로 보다 다양하고 세밀한 도전적 행동을 분석할 수 있게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발달장애인이 도전적 행동을 하기에 앞서 직면하는 상황 등 원인을 분석하고, 특정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 빠르게 모니터링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돌봄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는 돌봄 종사자가 직접 개수기를 이용해 수동으로 개별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 발생 횟수를 세고 빈도까지 확인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서울시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협의회 통계자료를 보면, 지난해와 올해 센터 이용자 10명 중 3명이 도전적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건철 종로구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센터장은 “도전적 행동은 계속 일어나는데, 이를 돌봄 종사자들이 모두 기록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 “도전적 행동은 선행 환경에 영향을 받아 발생할 수 있는데, 사람이 잠깐 놓치더라도 인공지능 분석 기술이 활용된 시시티브이가 도전적 행동 앞뒤 상황을 기록해 행동에 미친 요인들을 계속 살펴볼 수 있어 돌봄 종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물론 발달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 돌봄 종사자의 행동이 영상 기록으로 모두 남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사실 인권침해 우려도 있어 이번 시범 사업을 두고 고민이 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전적 행동의 앞뒤 맥락 분석이 중요해 장기적으론 이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종로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서 시범 운영 중인 ‘인공지능 활용 발달장애인 도전행동 분석 시스템’. 현재 센터에는 비전 인공지능(Vision AI) 기술이 적용된 시시티브이(CCTV)가 모두 4대 설치돼 있다.
시범 사업은 우선 서울시 종로·도봉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 한해 진행한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서울시와 함께 데이터에 기반을 둔 도전적 행동 중재 계획을 세워 복지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서울시는 제2기 발달장애인 지원 기본계획(2021∼2025)에 따라 인공지능 행동분석 시스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내년 1월 정도에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효과성 등을 정리할 예정”이라며 “결과에 따라 다른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도 사업을 적용할 수 있도록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이번 시범 사업을 통해 향후 ‘발달장애인 전 생애주기 돌봄 플랫폼’을 도입할 예정이다. 가족·학교·병원·복지시설 등 각 돌봄 주체별로 나누어진 정보를 당사자 중심으로 통합하는 ‘에이아이(AI) 케어(Care)’ 시스템을 통해 돌봄 체계를 지원한다는 목표다.
이번 시범 사업을 담당한 조혜진 에스케이텔레콤 이에스지(ESG) 얼라이언스 부장은 “세상은 결국 사람 중심이고, 사람을 돕는 따뜻한 인공지능 기술을 만든다는 게 에스케이텔레콤의 비전이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 돌봄 종사자들을 도울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종로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서 시범 운영 중인 ‘인공지능 활용 발달장애인 도전행동 분석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신건철 센터장. 에스케이텔레콤 제공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