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를 당한 다가구 주택의 후순위 세입자들이 모두 동의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피해 주택을 경·공매에서 낙찰받아 피해자들에게 임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그동안 대표적인 전세사기 피해 대책 ‘사각지대’로 꼽혀 온 다가구 주택에 대한 추가 대책을 정부가 마련하면서다.
27일 국토교통부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는 다가구 주택의 선순위 세입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엘에이치가 다른 후순위 세입자들의 우선매수권을 넘겨 받아 경매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구체안을 마무리 지은 뒤 관련 행정규칙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순위 임차인들의 동의만으로도 엘에이치가 경매에 나설 수 있게 될 경우, 강제 퇴거 위기에 내몰렸던 임차인들의 숨통이 일부나마 트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다가구 주택은 하나의 등기에 여러 세대가 살고 있는 특수한 구조 탓에 전세사기 특별법에 담긴 경매 유예와 우선매수권이 유명무실했다. 가령 총 12세대가 사는 다가구 주택의 경매 낙찰예상액이 10억원이고 각 세대 전세보증금이 2∼3억원 정도라면, 먼저 전세계약을 체결한 순서대로 3세대 정도는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순위 세대는 경매에서 보증금을 일부 또는 전액 회수하지 못한 채로 강제 퇴거 위기에 내몰린다.
이처럼 피해자 간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상황인 탓에, 정부는 그 동안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을 전세사기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하더라도 엘에이치 매입은 추진하지 않아왔다. 현재로선 정부 방침상 엘에이치가 경매에 나서려면 선순위 임차인을 포함한 모든 임차인들이 동의해야 한다. 대신, 정부는 지난 10월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에게 주변 공공임대주택을 최장 20년간 공급한다는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다가구 주택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피해자들이 살던 집에서 최대한 쫓겨나가지 않을 추가 대책의 필요성이 커지자 정부는 엘에이치의 경매 참여 방침을 바꿀 예정이다. 바뀐 방침에서는 후순위 임차인들이 모두 동의하면 엘에이치는 경매에 나서 주택을 낙찰받고, 시세보다 저렴한 임차료를 받는 매입임대 주택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때 선순위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고 퇴거해야 한다. 경매에서 엘에이치가 아닌 제3자가 건물을 낙찰받게 될 경우 엘에이치는 기존 ‘전세임대’ 제도처럼 후순위 임차인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집주인과 임차 계약을 맺는 방안을 검토한다. 아울러 국토부는 이달 중 다가구 전세사기가 집중된 대전시에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를 열기로 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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