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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재벌총수는 왜 ‘떡볶이’를 먹으러 갔나…그날의 손익계산서

등록 2023-12-13 05:00수정 2023-12-13 17:42

이창민의 한국 경제 속 재벌 탐구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연합뉴스

국내 재벌 지배구조의 핵심문제는 총수(지배주주)가 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총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회사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게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생산성 저하, 주가 디스카운트를 만들고 기업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재벌을 비판했었는데 이번에는 재벌 편을 좀 들어야겠다.

부산 세계박람회(EXPO) 유치전 전후로 보이는 윤석열 정권과 재벌의 행태는 한국 정경유착 구조의 타락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부의 자원과 민간의 자원을 구분 못 하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무거나 막 끌어다 쓰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사익 추구와 사농공상 마인드가 있다. 이런 마인드는 정권 자체의 위험 요인이다.

정경유착이라는 것은 정치권력과 재계의 긴밀한 관계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give and take)이다. 전형적인 공식은 재계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정치자금을 제공(give)하고, 대통령 당선 후에 대통령 또는 최측근과 만남의 기회(political access)를 얻고, 이 기회를 통해 원하는 것(정부 사업 수주, 규제회피 등)을 얻어내는(take) 것이다. 유명한 예가 미국 오바마 정권 때 공정거래위원회와의 반독점 이슈가 있었던 구글이다. 구글은 상당한 정치자금을 지출했고, 최고경영진인 에릭 슈미트가 백악관을 11번, 구글 로비스트가 60번 이상 방문했다.

21세기 들어 국내 정경유착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은 첫 번째가 이른바 ‘차떼기’다. 2002년 대선 때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가 현금 차량을 통째로 건네받는 방식으로 재벌로부터 수백억원대 불법 대선자금을 수금한 사건이다. 두 번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인데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누구인지를 우선 찾아낸 후 특정 재단 출연과 승마지원 등의 명목으로 차떼기보다 세련되게 자금을 제공했다. 나름대로 정경유착의 방식도 진화한 것이다. 그럼 부산 엑스포 유치전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은 것인지 따져보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재벌은 윤 대통령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우선 재벌은 무엇을 주었는가? 윤 대통령이 외교와 부산 엑스포를 매우 중요시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정권 인수위원회부터 그런 정보는 재벌에 흘러들어 갔을 것이다. 특히 부산 엑스포는 내년 총선용임이 너무 자명했다. 정치 경험이라고는 선거밖에 없는 윤 대통령에게 부산 엑스포는 개인적으로 너무 소중했을 것이다.

그럼 일종의 주는(give) 포인트가 잡힌다. 국정농단의 ‘주는 포인트’가 최순실인 것처럼 말이다.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면 현 정권 들어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 총수들이 모두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에 동행한 것이 다섯 번이다. 스위스·UAE, 일본, 미국, 프랑스·베트남 순방에 함께했고, 지난달 영국·프랑스 순방에도 같이 갔다. 11월21일 영국 국빈 만찬, 11월22일 한·영 비즈니스 포럼, 11월23∼24일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대사 초청 행사였다.

또, 일 년이 넘는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 기간 국내 주요 12대 그룹이 접촉한 국가는 모두 175개국이었고, 각 나라의 고위급 인사 3천여 명을 만났으며, 개최한 회의만 1600여회에 이르는데 절반이 총수나 대표이사급이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이것 외에 유치 활동 대상 국가에 국내 대기업들이 제시한 ‘당근’ 등 잠재적 비용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대내외적으로 쉽지 않은 경제 환경에서 경영에 집중했어야 할 재벌의 자원이 엉뚱한데 쓰인 기회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과연 재벌이 무엇을 받을 것인가? 가장 코미디이지만, 가장 유력하고, 재벌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고, 국민 입장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나리오는 실질적인 보상을 아무 것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정경유착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그냥 정경유착 구조만 놓고 보면 대단히 중요한 가정이 있다. 양쪽이 서로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주고받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이 나에게 금쪽같은 시간과 자원을 쪼개 도움을 주었으니 그것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윤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에게 있어야 거래가 성립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빠르게 했다. 그런데 모든 게 자기 탓이라던 사람이 사과한 지 일주일 만에 부산 민심을 달랜다며, 지난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 재벌 총수들을 불러 모아 ‘골목대장 놀이’를 하며 떡볶이를 먹였다. 윤 대통령의 사고 구조가 바닥까지 드러난 것이다. ‘모두가 앞에서 굽신거리는 것을 보고 자신과 자신의 웅장한 외교플랜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벌총수들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빵셔틀 정도다.’

대통령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국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국가재정을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하며, 민간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게 도와줘야 한다. 국민 비극의 핵심은 민간의 자원을 정부와 집권여당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하는 윤 대통령의 이런 ‘전두환식’ 발상이 비단 여기서만 그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과연 대통령실 운영에는 공과 사를 구분하고 있을까? 경영 승계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위해 윤 대통령과의 사진 한장이 필요한 총수 3·4세들 몇 명이 옆에서 웃고 있는 건 그냥 곁다리 에피소드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또 다른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재벌의 자체적인 손익 계산이다. 재벌은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해서 정경유착 노하우가 충분히 쌓여 있다. 즉 윤 대통령에 대한 분석은 끝내놓고, 직접적 실익은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볶이 먹는 데까지 따라가는 것이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구조에서 보면 재벌은 정부사업과 규제 완화를 얻어야 한다. 상위 재벌의 특성상 직접적인 정부조달보다는 총수 개인의 처벌회피, 재벌 소유구조와 관련된 규제 완화를 얻어내는 것이 우선순위다. 재벌에겐 기업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총수의 사익추구 극대화가 정경유착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재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여기서 많은 사람이 예상하는 것은 총수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본전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재판,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이혼 재판 등이 있다. 그런데 아마 재벌 내부의 전략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정치적 견제, 검찰 출신 윤 대통령과 사법부의 관계, 최근 사법부의 재벌사건에 대한 태도변화, 판사의 재량권 등을 볼 때 대통령의 사법부에 대한 개입을 통해 총수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는 것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그러면 은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 총수의 숙원사업 해결인데 이재용 회장이 은산분리를 얻어내 선대의 오랜 숙원인 은행업에 진출하려 한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법을 바꾸는 것은 국회 상황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데 재벌의 전략가들이 내년 총선 여당의 압승을 예측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남는 것은 미래에 총수에게 발생할지도 모르는 검찰 처벌의 재앙을 피하는 것이다. 회사의 자원을 동원해 총수의 개인 보험료를 지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재벌은 윤 대통령의 국정 기조가 정권 내내 사정기관을 통해 사방을 향해 난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경유착은 1980년대 전두환 시절로 퇴보했고 그 책임은 온전히 현 정권에게 있다. 재벌이 주는 방식만 조금 세련되어졌을 뿐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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