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주자로(맨위)와 그의 회사 ‘이탈디자인’에서 디자인한 현대차 모델들. 위부터 쏘나타(1988), 스텔라(1983), 포니(1974)
포니·쏘나타 탄생한 곳 디자이너·엔지니어 7천명
“이젠 여성·환경에 초점”
“이젠 여성·환경에 초점”
[디자인빅뱅] ⑤ ‘자동차 디자인의 허브’ 이탈리아 토리노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 토리노는 자동차의 요람이다. 피아트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 회사들이 시 바깥을 도넛처럼 둘러싸고 있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잡고 있는 이탈디자인도 그런 회사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으로 불리는 조르제토 주자로(68)가 세운 곳이다. 자동차전시관에는 폴크스바겐의 골프 등 세계의 명차들과 첨단 콘셉트카들이 즐비하다. 모두 이곳에서 디자인된 차들이다.
전시된 차들 중에는 국산차 첫 고유모델인 포니도 들어 있다. 이탈디자인이 ‘한국 차 효시’의 산실인 셈이다. 또 스텔라, 엑셀, 프레스토, 쏘나타, 라노스, 마티즈, 렉스턴, 젠트라까지 이탈디자인의 작품들은 한국 차의 역사나 다름없다. 프랑코 바이 대외협력담당 이사는 “현대차는 우리가 디자인해준 모델들로 세계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한 뒤 지금은 독자적인 디자인 개발능력까지 갖출 정도로 커졌다”며 “디자인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얼마나 빠르게 반영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인 만큼 세계 주요 판매거점에 디자인센터를 잇따라 세우는 것도 올바른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토리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자동차 디자인의 허브’이다.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르토네, 페라리 디자인으로 유명한 피닌파리나 등이 모두 토리노에 본사를 두고 있다. 피에몬테주 국제무역센터(CECCP)의 프란체스코 데발레 회장은 “모두 25곳의 자동차디자인회사에서 7천여명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두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만든 프로토타입만 무려 520개에 이른다”며 “자동차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보고 느끼려면 토리노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2만개를 넘는 부품들로 구성된 정밀기계다. 자동차 디자인은 이런 수많은 부품들이 서로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도록 씨줄과 날줄을 짜고, 여기에 더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모습까지 창조해내는 작업이다. 세계 자동차업체들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품질과 성능 경쟁에서 뚜렷한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디자인을 통한 자기 색깔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탈디자인에 20년째 몸담으며 현재 스타일 담당 임원을 맡고 있는 윤경구(47) 이사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빠른 성장을 지켜보면 뿌듯함을 느낀다”면서도 “디자인 측면에서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개성과 정체성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히트작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좋은 디자인의 범주 자체가 하나로 통일되는 추세여서, 디자인 차별화로 단기간에 승부를 걸기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윤 이사는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디자인 개발 속도 또한 아주 빨라진 환경에서 해법을 찾는다. “끊임없는 품질 및 디자인 개선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하고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의 안전도 고려하면서 여성들의 취향과 환경문제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자동차회사들이 결국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토리노/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디자이너 수학·물리도 공부”
디자인 회사 대표 카르체라노
디자인이 빼어난 자동차는 예술작품일까 아니면 좋은 상품일까?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대답은 ‘둘 다’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전문회사 ‘카르체라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피에로 루이지 카르체라노(54·사진) 대표는 “디자이너는 모양과 색깔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하나의 작품이 대량생산 상품으로 발전되기까지 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적이고 아름다움을 지녔더라도 시장에서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는 카르체라노 대표는 “같은 창조행위인데다 공간과 물체와의 기하학적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건축과 자동차 디자인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대학에서 디자이너 교육과정은 공학부에 두고 있는데, 학생들은 디자인 관련 이론과 실습뿐만 아니라 수학, 물리, 재료공학, 마케팅 등 광범위한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의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면서도 문화상품이며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앞으로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디지털 정보기술을 철저하게 익혀서 혁신적인 수단으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개발해야 하며,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자동차를 이해하려면 사회과학적 지식도 더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리노/글·사진 박순빈 기자
이탈디자인 창업자이자 대표인 조르제토 주자로(68)가 사무실에서 새로운 디자인 구상을 하고 있다.
이탈디자인 제공
이탈디자인 본사 앞에 전시된 도시형 컨셉트카 ‘비업’.
이탈디자인 제공
토리노/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디자이너 수학·물리도 공부”
디자인 회사 대표 카르체라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