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강국’ 미국 FTA협상 공세
한국 ‘공공성’ 내세워 “개방유보”
유보목록 미국 보다 많아 불투명 미국은 도박강국이다. 도박사업의 다양성이나 규모, 도박 수요층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대다. 특히 인터넷으로 도박을 즐기는 인구만 연간 2천여만명에 이른다. 에프티에이를 통해 미국 카지노자본까지 국내 상륙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사실 도박시장 개방과 관련한 국제분쟁의 대표적인 피해국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라인 도박 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파고들어 미국 정부와 의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박인구의 증가도 문제지만, 미국내 오프라인 카지노업체들이 시장기반을 잠식당한다며 아우성이다. 지난 2003년 카리브해 소국 안티구아 정부는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이 안티구아에 본거지를 둔 온라인 도박 사업자들을 차별대우해 ‘서비스교역에 대한 일반협정’(GATS)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세계무역기구는 이듬해 안티구아의 손을 들어주며 미국에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지난해에도 앤티가 바부다는 같은 이유로 미국을 제소했다. 한편 미 의회는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신용카드 사용과 자금이체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인터넷도박 자금지원 금지법’(UIGFPA)을 지난해 제정했다. 어린이를 인터넷 도박 사이트로부터 보호하고, 도박 사이트가 돈세탁 등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이었다. 미국은 이처럼 대내적으로는 도박산업에 대한 간접규제를 강화하면서, 최근 다른 나라와 에프티에이 협상에서는 도박시장까지 개방을 요구하는 추세다. 미국이 가장 최근 체결한 협정인 코스타리카 등 중미 5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CAFTA)에서는 도박의 국경간 서비스가 허용됐다. 대내 규제는 강화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개방과 자유화를 요구하는 이중성은 사실 미국의 통상협상에서 흔하다. 미국 협상안이 기업과 투자자들의 이익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 반대론자들은 통상협상에서 미국과 같은 이런 이중적 태도를 두고 ‘흡혈귀 효과’라고 한다. 흡혈귀에 물리면 흡혈귀가 되는 것처럼,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 때문에 국익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같은 방식으로 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협정문상의 ‘미래유보’ 목록에서 도박산업을 삭제하면, 미국의 도박사업자나 투자자들이 국내 사업자와 동등한 자격(내국민 대우)을 얻게 된다. 정부가 미국 사업자에게 시장접근을 제한할 수 없으며, 국내 주재도 요구할 수 없는 게 에프티에이의 원칙이다. 이를 어기면 해당 사업자로부터 정부가 국제분쟁조정기구에 제소당한다. 국내에서 도박산업은 사행성 오락게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공영역으로 분류된다. 체육진흥, 관광진흥, 폐광지역 지원 등이 목적이다. 정부는 이런 공익성을 내세워 지금까지 도박시장의 독점과 개방불가 원칙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런 영역의 공공성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인정될 수 있을지는 우리 쪽 협상단 안에서도 조금 회의적이다. 또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유보 목록(96개)이 미국 쪽(19개)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도박시장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카드의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도박산업과 시장규모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비대한 수준인데 외국 기업의 진출까지 더해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경제·사회적 피해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한국 ‘공공성’ 내세워 “개방유보”
유보목록 미국 보다 많아 불투명 미국은 도박강국이다. 도박사업의 다양성이나 규모, 도박 수요층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대다. 특히 인터넷으로 도박을 즐기는 인구만 연간 2천여만명에 이른다. 에프티에이를 통해 미국 카지노자본까지 국내 상륙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사실 도박시장 개방과 관련한 국제분쟁의 대표적인 피해국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라인 도박 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파고들어 미국 정부와 의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박인구의 증가도 문제지만, 미국내 오프라인 카지노업체들이 시장기반을 잠식당한다며 아우성이다. 지난 2003년 카리브해 소국 안티구아 정부는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이 안티구아에 본거지를 둔 온라인 도박 사업자들을 차별대우해 ‘서비스교역에 대한 일반협정’(GATS)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세계무역기구는 이듬해 안티구아의 손을 들어주며 미국에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지난해에도 앤티가 바부다는 같은 이유로 미국을 제소했다. 한편 미 의회는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신용카드 사용과 자금이체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인터넷도박 자금지원 금지법’(UIGFPA)을 지난해 제정했다. 어린이를 인터넷 도박 사이트로부터 보호하고, 도박 사이트가 돈세탁 등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이었다. 미국은 이처럼 대내적으로는 도박산업에 대한 간접규제를 강화하면서, 최근 다른 나라와 에프티에이 협상에서는 도박시장까지 개방을 요구하는 추세다. 미국이 가장 최근 체결한 협정인 코스타리카 등 중미 5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CAFTA)에서는 도박의 국경간 서비스가 허용됐다. 대내 규제는 강화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개방과 자유화를 요구하는 이중성은 사실 미국의 통상협상에서 흔하다. 미국 협상안이 기업과 투자자들의 이익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 반대론자들은 통상협상에서 미국과 같은 이런 이중적 태도를 두고 ‘흡혈귀 효과’라고 한다. 흡혈귀에 물리면 흡혈귀가 되는 것처럼,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 때문에 국익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같은 방식으로 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협정문상의 ‘미래유보’ 목록에서 도박산업을 삭제하면, 미국의 도박사업자나 투자자들이 국내 사업자와 동등한 자격(내국민 대우)을 얻게 된다. 정부가 미국 사업자에게 시장접근을 제한할 수 없으며, 국내 주재도 요구할 수 없는 게 에프티에이의 원칙이다. 이를 어기면 해당 사업자로부터 정부가 국제분쟁조정기구에 제소당한다. 국내에서 도박산업은 사행성 오락게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공영역으로 분류된다. 체육진흥, 관광진흥, 폐광지역 지원 등이 목적이다. 정부는 이런 공익성을 내세워 지금까지 도박시장의 독점과 개방불가 원칙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런 영역의 공공성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인정될 수 있을지는 우리 쪽 협상단 안에서도 조금 회의적이다. 또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유보 목록(96개)이 미국 쪽(19개)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도박시장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카드의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도박산업과 시장규모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비대한 수준인데 외국 기업의 진출까지 더해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경제·사회적 피해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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