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막으려는 ‘봉투 행동단’이 28일 협상장인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 앞에서 사자 얼굴 등을 그려넣고 “FTA 물어가라”고 적은 종이봉투를 머리에 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 뒤로 협상장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뉴스분석]
미 의회 강경한 주문…협상시한엔 융통성 둬
한국 ‘타결’ 매달려…“마지노선 의견수렴부터”
미 의회 강경한 주문…협상시한엔 융통성 둬
한국 ‘타결’ 매달려…“마지노선 의견수렴부터”
앞으로 3일 중대 고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판 통상장관급 회담으로 타결되더라도 더 큰고비가 남아 있다. 바로 각각 자국내 사후 동의 절차다. 두 나라 두루 해당된다. 미국은 협상 결과 평가 과정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한국과 협상에서 반드시 관철시킬 것과 지킬 것의 ‘마지노선’이 정해져 있다. 미국의 반덤핑 제도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사뭇 다르다. 협상을 하면서 선을 그렸다. 처음부터 있는 선이라면 ‘쌀 시장 개방 불가’ 정도다. 정치권에서 뒤늦게 마지노선 제시가 활발하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또다른 난기류의 불씨가 됐다. 이미 협상은 마지노선을 넘어서 버린 탓이다.
미국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인 찰스 랑겔 의원은 민주당의 새 무역정책을 27일(미국시간)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수전 슈워브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전달했다. 새 무역정책에는 노동·환경, 환율관리, 비관세 장벽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의회 다수파인 민주당의 주문이 압축돼 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주문사항들도 있다. △반덤핑 규제의 유지·강화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 금지 △자동차와 의약품, 기타 공산품의 시장접근 확대 등이다. 샌더 레빈 하원 무역소위원회 위원장은 “협상 내용만 만족스러우면 협정체결 의향서는 포괄적으로 정리해 시한 내 통보해 주면 된다”고 말했다. 무역촉진권한에 따른 협상 시한(3월31일)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문이다.
만약 미국 의회의 이런 주문들이 실제 협상에서 관철된다면, 한국 쪽으로서는 ‘항복 협정’을 맺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쪽 핵심 요구사항들은, 27일 열린우리당이 의원 42명의 서명을 받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전달한 ‘핵심 요구 10가지’와 대부분 충돌한다. 이 서명에는, 여당 안에서 그나마 미국과 협정 협상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참여했다. 일찌감치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한나라당이 28일 성공협상의 필수조건으로 발표한 7대 원칙과도 어긋난다. 이처럼 자유무역협정에 우호적인 여야 의원들의 요구사항마저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부처 안에서도 서로 마지노선이 달라 협상 막판에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크린쿼터 문제다. 협상단은 애초 스크린쿼터를 상황에 따라 복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미래 유보’ 목록에 올렸다가 미국 영화계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현재 유보’로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미국 협상단에 전달했다. 이에 대해 협상 이틀째인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양우 문화관광부 차관이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고 조창희 문광부 문화산업국장이 영화인들에게 전했다. 이름 밝히길 꺼린 청와대 관계자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일부 조항은 법무부에서 계속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고, 신약 최저가 보장제는 보건복지부에서 ‘장관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라며 제동을 걸고 있는데, 외교통상라인에서는 모두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협상 타결 이후의 부처간 협의과정의 어려움을 예고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미국은 스스로 정한 협상 시한조차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자세인 반면에 우리는 시한에 쫓기면서 타결만 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처럼 생각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마지노선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강성만 송창석 기자 sbpark@hani.co.kr
만약 미국 의회의 이런 주문들이 실제 협상에서 관철된다면, 한국 쪽으로서는 ‘항복 협정’을 맺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쪽 핵심 요구사항들은, 27일 열린우리당이 의원 42명의 서명을 받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전달한 ‘핵심 요구 10가지’와 대부분 충돌한다. 이 서명에는, 여당 안에서 그나마 미국과 협정 협상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참여했다. 일찌감치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한나라당이 28일 성공협상의 필수조건으로 발표한 7대 원칙과도 어긋난다. 이처럼 자유무역협정에 우호적인 여야 의원들의 요구사항마저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부처 안에서도 서로 마지노선이 달라 협상 막판에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크린쿼터 문제다. 협상단은 애초 스크린쿼터를 상황에 따라 복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미래 유보’ 목록에 올렸다가 미국 영화계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현재 유보’로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미국 협상단에 전달했다. 이에 대해 협상 이틀째인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양우 문화관광부 차관이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고 조창희 문광부 문화산업국장이 영화인들에게 전했다. 이름 밝히길 꺼린 청와대 관계자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일부 조항은 법무부에서 계속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고, 신약 최저가 보장제는 보건복지부에서 ‘장관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라며 제동을 걸고 있는데, 외교통상라인에서는 모두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협상 타결 이후의 부처간 협의과정의 어려움을 예고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미국은 스스로 정한 협상 시한조차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자세인 반면에 우리는 시한에 쫓기면서 타결만 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처럼 생각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마지노선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강성만 송창석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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