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기업의 진화] 4부 한국편- 아시아를 딛고 세계로
2. 삼성그룹
공급망관리 시스템 도입, 타이 생산법인 ‘재고품 0’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조립~검사’ 전담제 실시
2. 삼성그룹
공급망관리 시스템 도입, 타이 생산법인 ‘재고품 0’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조립~검사’ 전담제 실시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삼성그룹의 ‘체력’은 더욱 튼튼해졌다. 특히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 세트 부문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반도체 부문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조명을 받고 있긴 하지만, 휴대전화와 티브이(TV), 에어컨과 냉장고 등 세트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최근 2년 새 급상승했다.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한 그룹 브랜드 파워의 후광에다 삼성전자 특유의 공급망 관리 시스템과 셀 생산기법이 서로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써가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타이이다.
지난 15일 방콕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30분쯤 달려 찾아간 삼성전자 타이 생산법인은 ‘제2의 수원공장’으로 불린다. 휴대전화를 뺀 거의 모든 삼성전자 세트 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눈길을 끌어당긴 곳은 제품 출하장이었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린 완제품들은 인공지능 센서에 의해 수출국별로 자동 분류된 뒤, 곧바로 컨테이너에 실려 인근 항구로 이동했다. 진연식 삼성전자 타이법인 티브이 제조기술부장은 “여기에는 완제품 창고가 없다”며 “생산 즉시 판매처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고 없는 생산이 가능한 것은 삼성전자 고유의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시스템’ 덕택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한 이후 개발을 시작한 이 시스템은 최초 수주에서 최종 판매까지 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영업사원들이 매주 한두 차례씩 예상 판매량 정보를 시스템에 기입하면, 생산법인은 이를 토대로 제품을 생산한다.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니 별도 창고도 필요 없는 셈이다. 서건덕 삼성전자 상무(타이 생산법인장)는 “세계 각 판매·생산 법인과 본사를 연결해주는 공급망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삼성전자가 거의 유일하다”며 “이 덕분에 생산에서 판매까지 전 과정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베스트바이 등 유명 유통업체의 전산망에다 삼성전자 글로벌 공급망관리 시스템을 연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경쟁력의 또다른 비밀은 ‘셀(Cell) 생산 방식’이다. 대부분의 전자회사들이 컨베이어벨트 주변에 늘어선 직원들이 단순 반복 조립작업을 하는 데 반해, 삼성전자의 셀 생산 방식은 적은 인원이 제품 조립에서 품질 검사까지를 도맡아 한다. 컨베이어벨트 방식이 대량생산에는 유리하지만 작업자 한두 명이 이탈하면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 것과는 달리, 셀 방식은 작업자에게 높은 숙련도를 요구해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하다. 2000년대 중반 수원 공장에 처음 도입된 셀 생산 방식이 이제 타이 생산법인만 하더라도 티브이 라인은 100%, 냉장고 라인은 70% 가까이 도입됐다. 서 상무는 “글로벌 에스시엠 시스템으로 파악된 정보에 따라 유연하게 생산 제품과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셀 방식의 장점”이라며 “효율성과 생산성 차원에서 삼성과 외부업체 간 경쟁이 아니라 삼성 내 법인 간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말했다.
구매력을 갖춘 상류층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도 쑥쑥 자라고 있다. 지난 7월15일 타이 방콕의 한 고급 호텔엔 ‘하이소’ 1000여명이 모였다. 하이소란 타이 최상류층을 일컫는 말이다. 이 행사는 삼성전자가 벤츠와 씨티은행 등의 핵심 고객을 대상으로 연 비공개 초청 행사였다. 값이 28만밧(약 880만원)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엘이디 고급형 티브이 ‘시(C)9000’이 현장에서만 70대나 팔렸다. 대당 80만원이 넘는 갤럭시탭도 타이 최대 백화점인 ‘파라곤’에서만 100여대가 팔리는 등 지난달 28일 시판을 시작한 지 보름도 안 돼 모두 2000대가 타이 소비자를 찾아갔다. 이충로 삼성전자 상무(타이 판매법인장)는 “최근 4~5년 새 삼성전자의 브랜드 인지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하이소들의 구매 목록에 삼성전자 제품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시라차·방콕/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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