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기업의 진화] 4부 한국편-아시아를 딛고 세계로
8. 정리편
8. 정리편
‘배당액>주식자금’ 현상, 주주가치경영 허점 드러내
노동자·소비자 등 참여하는 ‘패러다임 전환’ 과제로 2000년 초, 삼성 이건희 회장은 최고경영자 평가의 30%를 해당기업의 주가로 하겠다는 ‘주가경영’ 원칙을 밝혔다. 그 해 연말, 삼성전자를 포함한 계열사들은 대대적인 자사주 매입에 나선다. 당시 삼성에스디아이(SDI) 대표였던 김순택 사장(현재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삼성에스디아이 주가는 두배 이상 올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단 삼성뿐 아니라, 엘지(LG), 에스케이(SK), 롯데 같은 대기업들도 일제히 주가를 중시하는 경영 방침을 밝혔다. ‘주주가치 증대’가 한국 기업경영의 목표로 자리잡는 시기였다.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한국 기업의 체질을 한번 크게 바꾸어 놓았다. 재벌개혁의 신호탄이 되어, 부실한 재벌 기업이 분식된 회계 장부와 부실 자산을 정리하고 재무건전성을 높일 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 전까지 없던 거대한 하나의 경영 규범이 생긴다. 주주가 기업 경영 행위의 최종 고객이며, 외부 이해관계자의 경영 참여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주가치 경영’이다. 주주가치 경영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낳았다. 기업 외부에 ‘주주’라는 견제 세력이 생겨나, 경영의 전횡이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주가치 경영은 주주 아닌 다른 이해관계자의 희생을 동반한다는 특징도 있다. 노동자는 주주가치와 상충점에 있는 대표적인 이해관계자다. 재벌개혁 과정과 대규모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과정이 같은 시기에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업에 주주는 왜 중요한가? 기업에 주식시장은 중요한 자금 조달원이다. 투자가 필요할 때 필요한 자금을 적절한 리스크를 안고 공급해 주는 게 주주의 구실이다. 구제금융 직후 2~3년 동안은 한국 주식시장이 이런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를 통해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1998년 13조5000억원이었고, 같은 해 현금배당은 1조50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1999년에는 조달 자금이 35조1000억원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업이 주주로부터 조달하는 자금이, 주주에게 주는 현금배당액보다 더 적은 일이 잦다. 2008~2009년에는 현금배당액이 오히려 많았다. 기업 성장에 어떤 이해관계자가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누구를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아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지를 다시 점검해 볼 시기가 된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경영을 시스템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은 이미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책임경영(CSR)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책임경영의 기본은 주주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경영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노동자, 지역사회, 환경,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경영 과정에 반영될 수 있어야 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근저에 깔려 있다.
‘2010년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강연할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영미식 주주가치 경영만이 옳다는 생각은 이제 낡은 것이며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며 “한국적 상황에 맞는 기업 거버넌스 시스템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 기업은 빠르게 진화해 왔다. 주주가치를 중심에 놓은 경영도 진화의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가치를 넘어선 새로운 거버넌스를 찾을 때가 됐고, 이해관계자 경영이 그 열쇳말이 되어야 한다. 세계 주요 경제국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기업 진화의 새로운 과제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2010 아시아미래포럼’ 문의 www.asiafutureforum.org. (070)7425-5237.
노동자·소비자 등 참여하는 ‘패러다임 전환’ 과제로 2000년 초, 삼성 이건희 회장은 최고경영자 평가의 30%를 해당기업의 주가로 하겠다는 ‘주가경영’ 원칙을 밝혔다. 그 해 연말, 삼성전자를 포함한 계열사들은 대대적인 자사주 매입에 나선다. 당시 삼성에스디아이(SDI) 대표였던 김순택 사장(현재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삼성에스디아이 주가는 두배 이상 올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단 삼성뿐 아니라, 엘지(LG), 에스케이(SK), 롯데 같은 대기업들도 일제히 주가를 중시하는 경영 방침을 밝혔다. ‘주주가치 증대’가 한국 기업경영의 목표로 자리잡는 시기였다.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한국 기업의 체질을 한번 크게 바꾸어 놓았다. 재벌개혁의 신호탄이 되어, 부실한 재벌 기업이 분식된 회계 장부와 부실 자산을 정리하고 재무건전성을 높일 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 전까지 없던 거대한 하나의 경영 규범이 생긴다. 주주가 기업 경영 행위의 최종 고객이며, 외부 이해관계자의 경영 참여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주가치 경영’이다. 주주가치 경영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낳았다. 기업 외부에 ‘주주’라는 견제 세력이 생겨나, 경영의 전횡이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주가치 경영은 주주 아닌 다른 이해관계자의 희생을 동반한다는 특징도 있다. 노동자는 주주가치와 상충점에 있는 대표적인 이해관계자다. 재벌개혁 과정과 대규모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과정이 같은 시기에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업에 주주는 왜 중요한가? 기업에 주식시장은 중요한 자금 조달원이다. 투자가 필요할 때 필요한 자금을 적절한 리스크를 안고 공급해 주는 게 주주의 구실이다. 구제금융 직후 2~3년 동안은 한국 주식시장이 이런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를 통해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1998년 13조5000억원이었고, 같은 해 현금배당은 1조50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1999년에는 조달 자금이 35조1000억원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업이 주주로부터 조달하는 자금이, 주주에게 주는 현금배당액보다 더 적은 일이 잦다. 2008~2009년에는 현금배당액이 오히려 많았다. 기업 성장에 어떤 이해관계자가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누구를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아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지를 다시 점검해 볼 시기가 된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경영을 시스템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은 이미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책임경영(CSR)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책임경영의 기본은 주주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경영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노동자, 지역사회, 환경,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경영 과정에 반영될 수 있어야 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근저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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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2010 아시아미래포럼’ 문의 www.asiafutureforum.org. (070)7425-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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