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 아직 적지만…교사들이 잘리고 있다” 지난달 3일 만난 알랑(69)은 중산층 은퇴자들이 모여 사는 파리15구역 조지 브라상 공원 안 중고책 시장에서 책을 팔고 있었다. 그는 “주문이 줄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경제 위기를 크게 느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일본인 아내와 세 자녀를 둔 그는 전형적인 프랑스 중산층이다. 10년 전부터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직까진 평온하지만 갈수록 불안감이 커진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단다. 그는 “정부에서 (기간제) 고등학교 교사를 자르고 있다. 교사도 줄이는 판인데, 내 연금도 나중에 줄이지 않겠냐”고 걱정했다. 이날 시장을 찾아온 그의 친구 상드만(66)은 위기를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상드만은 직원 4명을 둔 작은 여행사를 운영한다. 월 수입이 2007년과 비교하면 20% 정도 줄었단다. 그는 “(위기가 닥치면) 중산층 이하 계층이 더 많은 희생을 당하기 일쑤다”라고 말했다.
알랑(69)
그는 이번 위기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겨우 위기의 초입에 와있는 것 같다.” 상드만도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뭐가 일어날지 모르겠다.” 파리/ 글 사진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클라라(32)와 남편 조셉(35) 부부
“의료·교육 혜택부터 삭감…어떻게 이뤄낸 건데” 클라라(32)는 중소 정보기술업체에서 일한다. 남편 조셉(35)은 공립전문학교 교사다. 바로셀로나에 사는 이들 부부(사진)의 월 소득을 합하면 4000유로(600만원)쯤 된다. 유럽 최고의 실업률(21.5%)을 기록하는 스페인에서 이들처럼 맞벌이를 하는 부부는 행복한 축에 든다. 하지만 지난달 1일 만난 이들 부부도 위기의 쓰나미 앞에서 떨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공무원인) 나는 안정적이다. 이론적으로 평생 직장이다.” 조셉은 경제위기의 냉혹함을 잘 알기 때문인지, ‘이론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두고 봐야 한다. 그리스를 한 번 봐라. 우리도 그리스처럼 될지 모른다. 그리스에선 이미 공립학교 (기간제) 교사 3만명이 해고됐다.” 당장 그 주변에서도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카탈루냐주에서만 기간제 교사의 거의 절반인 수천명이 잘렸다. 그는 임금이 7%나 삭감됐다. 곧 있을 성탄절과 내년 여름 보너스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경제사정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스에서 공무원을 내쫓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사회보장서비스가 크게 줄어드는 것도 체감하고 있었다. 클라라는 “의료보험 혜택이 줄고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일궈낸 것들인데…. 정부가 제일 먼저 공공서비스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절망하지 않고 변화를 꿈꾼다. 이들은 지난 5월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번진 ‘분노하라’ 시위에도 참여했다. 이후 지역공동체별로 꾸려진 소모임에도 종종 나간다. 이곳에서 이웃들과 위기의 해법과 그 이후를 놓고 토론한다. 바르셀로나/사진 유동연 <한겨레21> 통신원 글 류이근 기자
아타나시오스
“아이 맡기는데 500유로…월급은 600유로” 월요일(지난달 7일) 오후 2시, 한낮인데도 아타나시오스(사진)는 집에 있었다. 두살배기 아이를 안은 채 손님을 맞았다. 아타나시오스는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면 이것저것 한달에 500유로는 들어간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일자리는 대개 월 급여가 500~600유로 밖에 안 된다. 일을 해봤자 남는게 없다”고 말했다. 부인은 세무 쪽 일을 한다. 벌이가 매달 1000유로 조금 넘는다. 그는 “아내 수입만으론 부족하다. 딱 생활비다. 그나마 우린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생활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테네 외곽 아노글리파다 지역에 위치한 어머니 집 2층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이른바 좋은 ‘스펙’을 갖췄다. 그리스 명문대에서 정보통신학 석사까지 마치고 스코틀랜드에서 1년 가까이 유학했다. 2009년까지 기술전문학교 시간제 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교사를 그만둔 이후 상황이 갑작스레 나빠졌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대서양과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를 덮치기 시작하면서다. 그는 닥치는대로 일했다. 정보시스템 쪽에선 일을 찾을 수 없어 건물 청소, 컴퓨터 수리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다국적 기업을 비롯해 수백 곳에 이력서도 넣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불렀다. “그래도 집이 있지 않은가. 대부분이 나보다 상황이 나쁘다. 동네에서 7일장이 서는데 철시할 때쯤 가보면 야채 부스러기를 주우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청 앞 무료급식소 앞에 줄 선 사람들도 이민자가 아닌 대부분 그리스인들이다.” 그는 대화 도중 자포자기란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위기가 끝나려면 10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고 하면서 절망했다. “우리 가족은 중산층이었다. 그런데 계속 추락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더욱 두렵다.” 아테네/글·사진 류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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