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위기 ‘화이트스완’ 시대]
⑤ 달러 축복인가 재앙인가
⑤ 달러 축복인가 재앙인가
미국엔 축복
달러 가치 크게 떨어져도
외채 규모는 안불어나 신흥국엔 재앙
달러 안정적 조달 힘들고
막대한 외환 보유도 부담 국제통화 격변기
달러 안정성 점점 약해져
국제 금융시장 불안 가중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을 전후해 한국 경제는 갑작스레 금융위기에 휩싸였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3개월새 50%나 폭등했다. 금융시장은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에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위기의 정도가 달랐을 뿐 이런 현상은 당시 다른 신흥국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다. 이런 사태는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국가간 실물·금융 거래가 폭증한 반면, 신흥국들은 구조적으로 국제 지급·결제 준비금인 달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제통화체제 개편 논의가 일어나는 듯했으나 선진국의 관심 부족으로 뒷전으로 밀려났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달러 가치가 더 훼손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미국 달러는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국제 기축통화(국제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국제 외환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60% 이상이 달러 표시 자산으로 구성돼 있을 만큼 달러의 위상은 막강하다. 이런 달러 주도 체제는 미국에는 축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외국에서 유통되는 5000억달러어치에 대한 달러 주조차익(세료리지) 외에도, 미국의 대외채무 지급이자율이 대외채권 투자에서 얻는 이자율보다 2~3%포인트나 낮게 형성돼 큰 이득을 남기고 있다. 또 통화가치가 하락해도 채권이 달러로 표시돼 있기 때문에 외채 규모는 불어나지 않는 반면, 미국이 투자한 대외채권에서는 환차익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득을 본다. 2007년의 경우 8%가량의 달러 약세로 약 4500억달러의 대외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미국 달러와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올해 신용등급 강등 이후에도 외국인들이 몰려 조달금리를 낮췄다”며 “미국이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하는 경상적자 국가임에도 대외채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바로 달러의 이런 특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달러 체제는 미국에게도 예기치 않은 비용을 발생시켰다. 1997~98년 아시아 경제위기에서 막대한 외환보유고만이 금융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신흥국들은 무역흑자를 통해 외환보유고를 축적했는데, 이것이 미국에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신흥국들의 무역흑자 경쟁 여파로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이 됐다. 또 신흥국들이 미국 채권을 대거 매입함에 따라 미국은 저금리 현상이 장기화돼 금융시장에 과도한 레버지리 투자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됐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흥국이 지는 부담은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큰 문제가 없음에도 선진국 시장의 유탄을 맞아 금융위기는 물론이고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신흥국들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쌓음으로써 위기 예방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신흥국들이 외환보유고를 이자율이 낮은 달러 자산에 운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 부담은 국내총생산의 1%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현 체제가 신흥국들에는 결코 윈-윈 게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앞으로 미국 달러는 미국의 재정적자 누적과 정치권 분열 등의 요인을 고려할 때 변동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기축통화의 필수요건인 안정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제통화체제가 지역적으로 다극화되고, 신흥국들에 달러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는 ‘금융안정망’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에서도 자체적인 투자수요을 감당할 수 있는 채권시장을 육성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축통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달러 가치 크게 떨어져도
외채 규모는 안불어나 신흥국엔 재앙
달러 안정적 조달 힘들고
막대한 외환 보유도 부담 국제통화 격변기
달러 안정성 점점 약해져
국제 금융시장 불안 가중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을 전후해 한국 경제는 갑작스레 금융위기에 휩싸였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3개월새 50%나 폭등했다. 금융시장은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에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위기의 정도가 달랐을 뿐 이런 현상은 당시 다른 신흥국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다. 이런 사태는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국가간 실물·금융 거래가 폭증한 반면, 신흥국들은 구조적으로 국제 지급·결제 준비금인 달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제통화체제 개편 논의가 일어나는 듯했으나 선진국의 관심 부족으로 뒷전으로 밀려났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달러 가치가 더 훼손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미국 달러는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국제 기축통화(국제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국제 외환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60% 이상이 달러 표시 자산으로 구성돼 있을 만큼 달러의 위상은 막강하다. 이런 달러 주도 체제는 미국에는 축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외국에서 유통되는 5000억달러어치에 대한 달러 주조차익(세료리지) 외에도, 미국의 대외채무 지급이자율이 대외채권 투자에서 얻는 이자율보다 2~3%포인트나 낮게 형성돼 큰 이득을 남기고 있다. 또 통화가치가 하락해도 채권이 달러로 표시돼 있기 때문에 외채 규모는 불어나지 않는 반면, 미국이 투자한 대외채권에서는 환차익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득을 본다. 2007년의 경우 8%가량의 달러 약세로 약 4500억달러의 대외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이런 달러 체제는 미국에게도 예기치 않은 비용을 발생시켰다. 1997~98년 아시아 경제위기에서 막대한 외환보유고만이 금융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신흥국들은 무역흑자를 통해 외환보유고를 축적했는데, 이것이 미국에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신흥국들의 무역흑자 경쟁 여파로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이 됐다. 또 신흥국들이 미국 채권을 대거 매입함에 따라 미국은 저금리 현상이 장기화돼 금융시장에 과도한 레버지리 투자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됐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흥국이 지는 부담은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큰 문제가 없음에도 선진국 시장의 유탄을 맞아 금융위기는 물론이고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신흥국들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쌓음으로써 위기 예방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신흥국들이 외환보유고를 이자율이 낮은 달러 자산에 운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 부담은 국내총생산의 1%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현 체제가 신흥국들에는 결코 윈-윈 게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앞으로 미국 달러는 미국의 재정적자 누적과 정치권 분열 등의 요인을 고려할 때 변동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기축통화의 필수요건인 안정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제통화체제가 지역적으로 다극화되고, 신흥국들에 달러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는 ‘금융안정망’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에서도 자체적인 투자수요을 감당할 수 있는 채권시장을 육성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축통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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