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부아예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인터뷰/ 로베르 부아예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탈규제’가 금융문제 악화시켜
실물경제 견줘 신용 부여하는
`할아버지 시대 은행’으로 가야
‘탈규제’가 금융문제 악화시켜
실물경제 견줘 신용 부여하는
`할아버지 시대 은행’으로 가야
로베르 부아예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실물경제에 견줘 너무 비대해진 금융이 작금의 경제위기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실물경제의 수요에 맞춰 신용을 부여하는 이른바 ‘할아버지 시대의 은행’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4년부터 프랑스응용경제연구소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해온 그는 “이제 금융의 지배는 끝났다”며 “투기적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와 강한 규제기관의 복구를 주문했다.
-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나?
“우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지난 20여년 전부터 누적된 문제가 불거진 커다란 위기의 초기 국면에 와 있을 뿐이다. 민간(특히 미국 가계)과 공적 부문의 부채 과잉은 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요구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위기는 앞으로 거의 10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아주 불확실한 시대에 진입했다.”
-유럽의 부채 위기가 악화하는 데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한 건가?
“유로의 출범은 남부와 북부 유럽의 전문화를 촉진하고 전체적으로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고 기대됐다. 그런데 빠른 금융통합이 그리스와 같이 경쟁력이 약한 나라의 무역수지 적자를 너무 쉽게 메울 수 있도록 자금을 공급했다.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선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갑작스러운 세계경제 후퇴는 모든 나라의 재정을 좀먹게 했다. 특히 금융시스템에 대한 구제금융이 국가재정을 악화시켰다. 모든 민간 부문에서 투자 이상으로 저축했다면 국가 차원에서 공황을 막기 위한 재정적자를 감당하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금융가들은 조급하게 긴축재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부채 상환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그리스에선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번 위기가 실물경제에 견줘 너무 비대한 금융과 관련이 있다고 보나?
“물론이다. 금융과 실물경제의 점증하는 괴리가 이번 위기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선 복잡한 금융수단을 통해 1달러에서 10달러의 신용을 경제에 공급해왔다. 이런 신용은 높은 차입비율(자산대비 부채비율)을 거쳐 투기에 이용됐다. 차입비율이 높으면 주택가격이나 주식가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금융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취약점은 뭔가?
“학자들과 금융가들은 금융시장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퍼뜨려왔다. 그들은 금융시장이 자본을 재배치하기 위한 완벽한 기구라고 가정한다. 이런 견해는 금융이 태생적으로 다소 먼 미래에 지불을 약속하는 ‘불확실성’이란 문제점을 빠뜨렸다. 탈규제는 금융의 이런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켰다. 낮은 신용도를 지닌 모기지(주택담보대출)가 신용평가사에 의해 최고 등급을 받은 증권들과 섞였을 때 위기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금융의 지배가 끝났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보는가?
“나는 최근에 쓴 <금융가들이 자본주의를 파괴할 것인가?>란 책에서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장기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가 지난 4반세기 동안 미국 경제의 진짜 성장을 가져왔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월가에 대한 신뢰와 정통성의 상실, 자본과 권력의 잘못된 할당, 분열된 사회에 대한 정치적 난맥, 장기간의 구조적 실업은 미국이 다시 황금시대로 돌아가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경제는 성장의 엔진을 잃어버렸다. 아메리칸드림은 더이상 누구에 의해서도 실현될 수 없다. 다만 미국 밖에선 실행해볼 만한 가치 있는 전략이 있다. 공매도나 증권화,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위험한 금융상품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물경제의 수요에 반응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에 신용을 부여하는 이른바 ‘할아버지 시대의 은행’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투기적 자본 유입과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와 강한 규제기관의 복구도 필요하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