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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잘 살아보세, 잘 실현될까

등록 2012-12-21 19:53수정 2012-12-22 12:22

박근혜 정부에서 “잘살아보세”라는 희망의 효과가 샘솟을 수 있을까. 박근혜 당선자가 1970년대 유신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새마을운동 캠페인을 하던 모습. 박근혜 후보 캠프 제공
박근혜 정부에서 “잘살아보세”라는 희망의 효과가 샘솟을 수 있을까. 박근혜 당선자가 1970년대 유신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새마을운동 캠페인을 하던 모습. 박근혜 후보 캠프 제공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희망으로 포장된 변종 경제성장론
5+2와 747처럼 숙명적인 딜레마

“다시 한번 ‘잘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겠다.”

간결한 문장에 담긴 명쾌한 메시지였다. 대선 이튿날인 20일 박근혜 당선인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대국민 인사’를 통해 이런 포부를 밝혔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의 슬로건이자 70년대 고도성장의 첫단추를 끼운 ‘국민동원’의 추억을 현재를 사는 많은 사람에게 다시금 떠올리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박근혜 당선인은 공식 선거 기간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더는 성장률이라는 겉보기 수치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성장률이라는 거시지표보다는, 고용이나 사회안전, 행복도 등 각론 지표를 강조하는 것이 박근혜노믹스의 뼈대라는 얘기다. 흔히 한 나라의 부의 크기를 재는 척도인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행복지수’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겠다는 얘기도, 그의 참모그룹들은 자주 입에 담아왔다.

그럼에도, 박근혜 당선인이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는 ‘국민 행복’ 역시 결국엔 경제성장에 따른 결과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박근혜 당선인은 ‘잘살아보세’ 이야기 바로 앞 대목에서 “우리나라에서 소외되는 분 없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버전으로 거듭난 ‘잘살아보세’ 구호는 이른바 ‘희망의 효과’로 포장된 변종 경제성장론에 다름 아니다. 자본이나 노동 등 요소투입량뿐 아니라 신뢰나 법질서, 문화, 자부심, 사회결속력 등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성장에 큰 보탬을 준다는 주장 정도로 이해함직하다.

사실 희망의 효과 카드를 써먹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참여정부 초기 경제분야 참모들은 ‘5+2’를 입에 올리곤 했다. 당시 5% 정도로 추정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에다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으로 탄생한 정권’이라는 희망요소 2%포인트를 더할 경우, 잠재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747 공약의 원조라고나 할까?

남는 건 내년 2월이면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뒤를 이어 등장할 박근혜 정부에서 우리 사회에 희망의 효과가 샘솟을 수 있을 것인가의 물음뿐이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린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50~60대의 ‘응집된 방어의 표심’이 20대에서 40대를 아우르는 ‘분노와 심판의 표심’을 눌렀다는 분석이 많다. 젊은 시절 산업화시대를 일군 주역이라는 자부심에 더해, 집값 하락과 은퇴, 부족한 노후 대비 등 인생 3막 즈음의 세대들을 휘감고 있는 원초적 불안감을 해소할 뚜렷한 비전을 야권 후보가 제시하지 못한 결과라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분노와 심판의 표심이 겨냥했던 과녁이 권위주의적 조직문화,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 터무니없이 높은 주거비용, 부족한 복지제도 등의 장벽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기존 시스템이었다는 점이다. 어찌되었건, 윗세대들이 발 딛고 선 기반이자 그들이 누리던 혜택이며, 동시에 좀체 잃고 싶지 않은 기득권과도 상당 부분 겹치기 마련이다. 불안감에 지키려는 자와 분노에 차 바꾸려는 자의 갈등이 종종 ‘세대전쟁’으로 옮겨붙곤 하는 이유다.

선거에선 세대전쟁으로 간단하게 승패를 가릴 수 있다. 표를 많이 얻는 쪽이 승자가 된다. 하지만 정책을 통해 세대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란 훨씬 어렵다. 특히 이번 선거 결과는 희망의 효과를 들고나온 박근혜노믹스의 앞날에 놓인 숙명적 딜레마를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치열한 대결 끝에 자신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정권을 지탱해줄 기반의 편에 한발 더 다가설수록, 다른 한편에선 절망과 좌절, 무관심과 허무, 결국엔 더 큰 분노와 증오의 기운이 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내년 2월 정부 출범 이전까지 이 숙명과도 같은 딜레마를 풀 묘안을 찾지 못하는 한, 그리고 임기 내내 뚝심있게 과제를 실천해내지 못하는 한, ‘다시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절망의 승수효과’에 맥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다.

최우성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morgen@hani.co.kr

[한겨레 캐스트 #18] <대선 특집> 박근혜 시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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